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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울산문화재연구원)
저널정보
(사)한국문화유산협회 야외고고학 야외고고학 제48호
발행연도
수록면
45 - 70 (26page)
DOI
10.35347/jkfa.2023..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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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부터 원삼국시대까지 우두머리의 명칭과 성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펴보고 다호리유적 군장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首長’이라는 용어는 불평등사회의 지배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본고에서는 말 그대로 각 사회의 우두머리란 뜻으로 사용하였다. 시대별로 우두머리의 명칭이 청동기시대 전기는 村長, 후기는 族長, 초기철기시대와 원삼국시대는 君長으로 변화하는데 명칭의 변화만큼 성격도 차이가 있다. 족장은 혈연적 평등사회의 지도자, 군장은 불평등사회의 지배자를 의미한다. 다호리유적의 군장은 『三國志』 魏書 東夷傳에 主帥 혹은 臣智라고 기록되어 있다. 청동기시대 족장은 평등사회의 지도자인데 이때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아 족장이 巫의 역할을 같이 담당하였다. 초기철기시대가 되면 巫는 祭司長으로 변화한다. 불평등사회의 지배자인 군장이 등장하며 점차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기 시작한다. 원삼국시대 다호리유적 단계가 되면 정치・종교 분리가 가속화된다. 원삼국시대 사라리유적 130호 단계가 지나면 군장에서 종교적 이미지가 거의 사라진다. 다호리유적에서 동검과 동경이 부장된 9기의 무덤 피장자가 君長(主帥 혹은 臣智)이다. 主帥의 권한을 계승하였을 것이다. 군장은 마을을 총괄하고 그 아래 우두머리 층에서 어느 정도 업무가 분장되었다. 직능별로 채광, 철기제작, 농지개간, 조세와 교역, 식량생산, 전사, 외국과의 교류 등을 담당하며 분업화하였다. 사회적 분업이 커질수록 경제적 차별성이 커진다고 한다면 다호리유적은 청동기시대나 초기철기시대에 보이는 단순한 협력체제가 아닌 원삼국시대의 본격적인 분업체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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