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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이 논문은 11세기 후반 집필된 남부 이탈리아 노르만족 연대기를 분석해 시칠리아 전쟁 속 노르만족과 이슬람 세력의 관계를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노르만족은 약 30년간의 전쟁 끝에 이슬람에게 승리를 거뒀지만, 이 전쟁에서 종교적인 성격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물론 노르만족은 기독교도이자 교황의 봉신으로 이슬람교도와 대립하는 입장이었으나 이는 일방적인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었다. 시칠리아 전쟁은 종교적 열정이 아닌 부와 토지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됐으며, 전쟁에서 노르만족과 이슬람 세력은 필요한 경우 군사적, 정치적으로 협력하거나 연합을 맺었다. 뿐만 아니라 노르만족은 이슬람교의 몇몇 관습을 인지하고 이를 설명할 정도로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었으며 때로는 이 관습을 용인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르만족의 시칠리아 정복은 11세기 유럽 다른 지역에서 목격된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의 대립과도 비교해 볼 수 있다. 11세기 초반부터 알프스 이북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또한 피사인과 제노바인은 1087년 지리 아미르국의 수도를 공격하며 이를 기독교 세계의 적을 물리치는 성전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11세기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왕국들은 종교와 관계없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서로 연합하거나 충돌했다. 시칠리아 정복은 전자보다 후자에 가까운 성격을 보이며, 종교보다는 정치적, 군사적 관점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러한 성격은 전쟁에 참여했던 노르만족과 이슬람 세력의 정치적 상황, 그리고 시칠리아라는 공간적 배경이 가졌던 역사적 맥락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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