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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우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동양학 동양학 제95호
발행연도
2024.4
수록면
69 - 93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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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경주 양동지역의 유학자 李中久는 동학농민운동과 일본군의 조선 무단 침입을 통해 조정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한계를 자각하다. 특히 일본군의 궁궐 장악 목도와 동학민들의 물건 약탈 경험은 그로 하여 금 李彦迪의 학문과 주자학에 매진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다. 하지만 일본의 노골적인 조선 침략 속에 이중구는 고뇌하는 지식인에서 점차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변모하 게 되었다. 그는 국채보상운동에 호응하여 경주향교 斷煙회사에 회장으로 취임하으며, 일본담판사로서 渡海 하라는 고종의 密旨를 받고 열렬히 부응하다. 또한 학교를 설립해 교육사업에 힘을 보탰으며, 의병장이나 독 립운동가들과 끊임없이 정보를 공유하고, 역사적 名臣이나 忠臣에 대한 추모사업에 동참하는 사업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이러한 활동은 조선이라는 국가와 경북이라는 지역의 역사적 근간을 기억하고, 자부 심을 고취시키며, 후손들에게 그 기풍을 계승할 수 있도록 하는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대한제국은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고, 이중구는 망국의 신민이 되었다. 현실적인 한계를 자각하며 그 는 근대의 지식인으로서, 문중의 어른으로서, 일본인에게 모욕당하지 않도록 중도를 걸으며 민족적 자존감과 근본을 지키려 하다. 이런 이중구의 행보와 의지는 연령·가문·지역을 초월한 많은 이에게 공감을 얻으며 ‘紫雲契’라는 모임을 통해 광복 이후까지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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