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의약학
농수해양학
예술체육학
복합학
지원사업
학술연구/단체지원/교육 등 연구자 활동을 지속하도록 DBpia가 지원하고 있어요.
커뮤니티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와 전문성을 널리 알리고, 새로운 협력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네트워킹 공간이에요.
초록·키워드
이 논문은 고려 말기 우왕 재위 기간(1374-88) 동안 고려가 직면했던 대내외적 군사 위기와 그에 대처해서 진행된 고려의 군사화를 검토하였다.
우왕 즉위 직후에 가장 큰 위협이 되었던 것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몽골제국의 존재였다. 몽골과의 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된 뒤로는 당시 요동으로 진출하던 명이 고려에 직접 위협을 가했다. 이 시기 고려는 정권의 사활이 걸린 북쪽 변경 방어에 한 순간도 소홀할 수 없었다. 한편 왜구는 거의 항상 고려를 침략했으며, 규모도 거대했고 공격 지점도 전국에 걸쳐 있었다. 이 기간 중 왜구는 거의 항상 고려를 침략했으며, 규모도 거대했고, 공격 지점도 전국에 걸쳐 있었다. 게다가 체제에 불만을 느낀 반란군이 전국에서 봉기하여 국내 정세는 더욱 불안정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고려는 차근차근 군사화의 길을 걸었다. 우왕 2년(1376)에는 전국에 걸쳐 약 10만 명에 달하는 군사를 파악하였다. 우왕 4년(1378)에는 그때까지 서북 지역에서만 시행하던 翼軍 체제를 전국에 적용하였는데, 이는 해당 지역의 인력과 물력 전체를 군사 활동에 투입한다는 극단적인 총동원체제였다. 우왕 9년(1383)에는 명과의 충돌이 예견되고, 왜구의 침입이 극성을 이루던 상황에서 재차 전국에 대대적인 동원령이 발동되기도 했다. 우왕 13년(1387) 연말부터 전력투구를 거쳐 단행된 우왕 14년의 요동 정벌은, 14세기 후반의 몽골제국 붕괴로부터 비롯된 동아시아 국제 정세의 최종 결과물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고려군은 말머리를 돌렸고, 그 결과 무너진 것은 고려-명 관계가 아니라 고려 왕조 그 자체였다.
공민왕 즉위부터 고려 말까지 40여 년의 과정은 군사화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군사화는 고려 말 조선 초의 격변을 설명하는 인과관계의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본문·목차
인공지능 문자 인식 모델을 통해 추출된 텍스트로, 일부 오타나 오류가 포함될 수 있으나 지속적으로 개선 중입니다.
오류를 발견하셨다면 해당 부분을 드래그한 후 ' 를 통해 신고해주세요.
오류를 발견하셨다면 해당 부분을 드래그한 후 ' 를 통해 신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