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정아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교육사학회 한국교육사학 한국교육사학 제46권 제3호
발행연도
2024.9
수록면
79 - 109 (31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은 민족해방의 주체로서 어린이를 강조했던 방정환의 어린이교육운동의 실천 과정과 교육사적 의의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방정환의 어린이교육운동은 민족주의 계열의 신문화운동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는 의암 손병희의 사위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천도교에 입문하였다.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이 고취되던 시기에 경성청년구락부를 결성하여 매우 활발히 교육 활동을 실천하였다. 식민지 초기 무단통치기와 문화통치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방정환은 교육은 개인의 발전과 성장만을 추구하기보다는 집단적-즉 민족적-요구에 의해 규정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당시 초등교육기관에 해당하는 보통학교에서의 교육은 제국주의 식민 지배 논리에 맞춰진 훈육과 규율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식민지시기의 방정환의 어린이교육운동은 민족독립운동을 위한 민족적인 자각에서 시작되어 그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이었다. 즉 학교교육 이외의 장에서 조선인의 행위는 식민지배 권력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방정환의 어린이교육운동은 민족주의 계열의 신문화운동의 일환으로서 어린이가 조선 민족으로서 정체성을 지켜나가고 독립의 주체가 되는데 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민족주의 계열의 신문화운동의 맥락에서 방정환의 어린이교육운동은 천도교소년회와 여러 소년단체들과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며 전개되었다. 1920년대 초 어린이날 기념 행사를 진행하면서 방정환은 그간의 ‘소년운동’을 ‘어린이운동’으로 재개념화 하고 널리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한편 그는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에 도요대학(東洋大學) 문화학과 청강생으로 있으면서 개벽사 동경 특파원과 천도교청년회 동경지회장을 맡았다. 이때 그는 아동예술에 관심이 있는 일본 유학생을 중심으로 조선 최초의 어린이문제연구회인 색동회를 창립하고 1923년 3월에 개벽사에서 색동회 회원이 주축이 되어 잡지『어린이』를 창간한다. 이러한 방정환의 어린이교육운동의 교육사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어린이를 주체로 세우고 자주 독립 의지를 실천하고자 한 정치적 성격의 교육운동이었다. 둘째, 천도교청년회, 개벽사, 천도교소년회, 색동회 등을 통해 방정환 일인의 교육활동이 아닌 실천적인 인적 네트워크 형성했다. 셋째, 세계어린이해방운동사의 한 흐름으로 어린이인권의식을 성장시켰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