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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정호 (경남대학교)
저널정보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탐라문화 탐라문화 제76호
발행연도
2024.7
수록면
281 - 31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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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조선시대 후기의 문인이었던 김려의 창원 유배지도를 그려보는 데 목표를 두었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김려의 창원 유배살이를 심도 있게 고찰하여적소 체험과 저술 속에 나타난 창원지역의 장소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정리해 보자면, 김려는 창원에서 유배살이를 하면서 3곳의 적소에서 지냈다. 그의 첫번째 적소는 1801년 4월 창원에 유배 왔을 때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율티리였다. 그곳에서 6개월 남짓 머물다가 그는 1801년 10월 무렵 두 번째 적소인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로 옮겨 생활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풍토병을 치료하며 3개월 가량 지내다가 그는 1802년 3월 무렵에 본래의 적소였던 진전면 율티리로 옮겨 생활했다. 하지만 그는 병세의 악화로 인해 1805년 3월 무렵 세번째 적소인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인곡리의 의림사에 머물며 건강을 보살폈다. 그런 다음 그는 그곳에서 5개월 남짓 지내다가 본디 적소인 진전면 율티리로 옮겨 생활했다. 아울러 본 연구자는『우해이어보』속에 나타난 특정 지명과 구체 공간의 장소감에 대해 꼼꼼하게 따져보았다. 이를테면 그는『우해이어보』 본문에서 ‘진해’라는 행정명을 여러 번에 걸쳐 언급하고 있지만, 여기서 일컫는 우해와 우산은 당시‘진해현’의 다른 이름으로 언급했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그는 지금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삼진(三鎭)지역을 중심으로 창원지역의 장소성에 의미부여하고 있었다. 특히 그가『우해이어보』 속에서 언급하고 있는 구체 장소로는 고저암, 청송 염전, 양도, 주도, 실음포, 연미정, 역참, 목면호, 시장, 남문 화류거리, 포구, 그밖의 모래밭, 갯벌, 계곡 등이었다. 이같은 장소들은 김려의 직⋅간접 체험과 당시 창원의 지역성 내지 문화현상을 보여주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이 글을 통해 김려의 창원 유배살이 행보, 나아가 조선후기 창원의 지역성과 문화현상을 이해하고자 했다. 앞으로 창원지역에서는 김려의『우해이어보』와 유배 체험을 보다 실질적인 차원에서 지역문화 콘텐츠로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창원지역을 최초의 ‘어보(魚譜)’ 발상지 또는 해양문화의 메카로써 문화 정체성을 확립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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