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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남중 (전남대학교 역사문화연구센터)
저널정보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동양학 동양학 제96호
발행연도
2024.7
수록면
237 - 258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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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조선과 부여가 종족적으로 관련이 있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고려 후기에 부여왕 부루가 단군의 아들이라는 글이 보이며, 17세기 이후 고조선에서 부여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확대되었다. 최근에는 예맥의 일 원으로 고조선과 부여를 연결시키고 있으나 중국 학계에서는 양 세력이 관련이 있다는 데에 부정적이다. 三 國志 의 ‘濊王之印’ 기사를 통해 부여가 스스로 濊를 자처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전 중국 기록에서는 부 여를 오환과 묶어 이해하거나 胡로도 보았다. ‘濊王之印’은 부여가 스스로 胡로 불리기를 거부하고 예로 불리 기를 원했음을 보여준다. 고조선 역시 여러 기록에 의거하여 예 또는 예맥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 에서 부여와 고조선은 모두 예맥의 범주에 들어가는 세력이라 하겠다. 삼국사기 에서도 낙랑국, 고구려, 부여 가 서로를 야만시하지 않고 신성한 존재로 특별하게 인식하고 있어 세 세력이 동일 계통의 종족임을 알 수 있 다. 부여의 가장 이른 시기 건국 신화 기록이 있는 論衡 에서는 동명이 橐離國에서 남하하여 부여를 세웠다 고 전한다. 이에 부여를 세운 사람들은 북쪽에서 남하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또 다른 부여 시조 신화라 할 수 있는 해모수 신화와 비교할 때 이러한 인식에는 문제가 있다. 동명 신화는 부여인이 중국인과 교류하면 서 현실적으로 변형한 것으로 보인다. 탁리국은 천신이 산 ‘하늘나라’를 현실화한 이름이며 북쪽은 천신이 거 주한다고 여겼던 북쪽 하늘을 고려한 설정으로 보인다. 이에 동명 신화에 근거하여 부여를 세운 세력이 반드 시 북쪽에서 들어온 유이민이라고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또한 부여의 해모수 신화와 고조선의 단군 신화에 공통된 요소도 보인다는 점에서 부여는 고조선을 같은 예맥족으로 비슷한 근원을 지닌 세력 정도로 인식하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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