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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용우 (한국간도학회)
저널정보
한국지적학회 한국지적학회지 한국지적학회지 제40권 제2호
발행연도
2024.8
수록면
117 - 141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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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동북공정에서 ‘고구려 역사가 중국 역사’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고구려는 한사군 중 하나인 현토군의 고구려현에서 시작되어 번창하였으나, 한 번도 한사군의 영역을 벗어난 적이 없으며, 역대 중국왕조와 신속 관계를 유지하다가 당나라에 의해서 통일되고, 그 유민 대다수가 한족으로 융입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한서 , 삼국지 , 산해경 등의 중국 사서들에 의하면 고구려는 현토군 설치 이전에 존재했으며, 고구려현을 품고 있는 현토군이 고구려의 침략으로 군을 고구려 서북쪽으로 옮기기도 하는 등 고구려와 고구려현은 별개라는 사실이 확연하다. 따라서 현토군 설치 이전부터 고구려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고구려 건국 연도가 재정립되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여, 많은 사서와 자료들을 검토하여 고구려 건국 연도를 기원전 217년으로 재정립하였다. 그리고 한사군이 설치된 영역은 위만조선의 영역일 뿐이라는 기록과 현토군의 고구려현에서 요하가 발원한다는 기록, 삼국사기 에 고구려 첫 도읍지가 흘승골성으로 북진의 의무려산이라고 명시된 것을 토대로, 한사군의 위치가 북진의 의무려산 서쪽에서 난하 유역에 걸쳐 설치되었다는 것을 밝혔다. 또한 고구려현은 고구려와는 완전히 별개로 서진(西晉) 시대에도 존속하였고, 고구려는 한사군과 한나라를 적대시하여 한사군을 지속적으로 공격했다는 것도 밝혀냈으며,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려는 커다란 목적 중 하나가 대진국 발해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어야 고구려 멸망 후 유민들이 한족 중국으로 융입되었다는 동북공정에서의 주장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밝혔다. 결국 중국이 동북공정에서 ‘고구려 역사가 중국 역사’라는 근거로 제시한 ‘고구려현에서 고구려가 시작되어, 한사군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당나라에 의해서 통일된 후, 그 유민 대다수가 한족으로 융입되었다’라는 주장은 모두 허구이거나 허구임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밝혀, 동북공정이 허상이라는 것을 규명한 것이다. 아울러 중국 역시 동북공정이 허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구려 역사를 한족 중국 역사로 만들기 위해서 억지를 부리는 이유는 모택동이 ‘공화국의 장자’라고 극찬한 만주의 영토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는 것과 모택동이 만주를 극찬한 이유와 만주가 중국에 강점된 경위도 함께 기술함으로써, 만주의 영토권이 우리 한민족에게 귀속되어야 하는 이유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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