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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서울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88집
발행연도
수록면
59 - 87 (29page)
DOI
10.18496/kjhr.2025.5.88.59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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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대한제국은 일본의 강압에 대응하여 러일전쟁 직전 전시중립화와 한러동맹을 동시에 추진했다. 한편 고종은 을사늑약 체결 이후 외교적으로 일본에 저항하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실행했다. 그 중 핵심적인 사건이 바로 고종의 헤이그특사 파견이었다.
을사늑약 체결을 전후하여 고종은 니콜라이 2세에게 대한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수차례 보냈다. 고종은 의병 활동을 측면에서 지원하며 외교적으로 러시아와의 연대를 모색했다. 또한 고종은 신뢰하는 외국인, 전 주한 프랑스공사대리 퐁트네, 덴마크인 전보기사 뮐렌스테트 등을 통해 니콜라이 2세에게 서신과 전보를 지속적으로 전달하며 대한제국의 독립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했다. 고종은 이용익을 페테르부르크로 파견하여 외교적으로 대한제국의 중립국 방안을 추진하면서 헤이그특사 파견을 준비했다.
고종은 헤이그회의와 헤이그 국제재판소를 활용하여 외교적으로 대한제국의 독립을 수호하려 했다. 고종은 헤이그 국제재판소에서 대한제국의 운명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근거로 약소민족 보호 의무를 상기시키며 열강에 호소했다. 세 개의 그룹 가운데 두 그룹은 헤이그로 가지 못했으나 이준, 이위종, 이상설 특사는 헤이그로 파견되어 대한제국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환기시키고자 했다. 이에 일본은 고종이 직접 일본에 가서 사죄해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하며 강제 퇴위라는 초강수로 대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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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국문초록
  2. 1. 머리말
  3. 2. 러일전쟁 이후 고종과 이범진의 외교적 대응
  4. 3. 을사늑약 전후 대한제국의 상황과 고종의 저항
  5. 4. 러시아가 바라본 고종의 헤이그특사 파견
  6. 5. 맺음말
  7. 참고문헌
  8. Abstract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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