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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 전기 『맹자』 경연에서 이루어진 군신 간 대화의 중요한 쟁점들을 분석한 것이다. 맹자는 군주의 정치권력을 견제하고 비판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경연에서 군주의 의심을 사기도 했다. 경연에 참석한 경연관들은 맹자의 발언이 갖는 중요한 정치적 의미와 위상을 설득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성종 연간에 이루어진 불교 비판은 맹자의 이단 비판, 즉 양주・묵적에 대한 맹자의 비판을 논거로 진행되었다. 맹자의 시대에 양주・묵적이 낳은 폐해보다도 오늘날 그럴듯한 불교의 논리가 유학에 미치는 위해가 더 크다는 것이 비판의 논점이었다. 더구나 불교는 삼대의 이상 정치라는 왕업의 실현에도 심각한 걸림돌로 간주되었다. 맹자의 학설은 이단 비판을 넘어 조선 사림들이 도학 정치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군신공치(君臣共治)의 이상을 실현하는 과업에서도 중요한 시금석 역할을 했다. 『맹자』 경연의 경연관들은 존심양성(存心養性), 구방심론(求放心論) 등을 통해 군주 수신의 방책을 제시했고, 군주의 심학에 기반한 왕정의 사업을 조선 국왕들이 적극 추진할 것을 권고했다. 군신이 효제와 인의의 덕목을 배양하고 확충해서 자율적인 교화에 기반한 왕도정치의 시행을 강조할때마다 맹자의 정치론이 다시 새롭게 조명을 받았다. 공자의 존주(尊周)와 달랐던 맹자의 행왕론(行王論)은 경연에서 의심과 비판도 받았지만, 조선 국왕이 왕도정치를 시행할 수 있는 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군주 수신과 왕정의 토대를 제공한 『맹자』 경연은 군주의 성학을 구성하는 중요한 이념적 가치와 내용을 부각시킨 논쟁적인 대화의 현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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