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소속 기관 / 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동아대학교)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연구 한국학연구 제94집
오류 신고하기

피인용 0

검색

    초록·키워드

    본 연구의 목적은 기록자료들과 순흥 읍내리 고분군에 대한 고찰을 통해 신라 사회의 격변기를 조명하는 데 있다.
    신라사에 있어서 주목할 사람은 법흥왕인데, 이를 고고학적 분묘군에 견준다면 순흥 읍내리 고분군이다. 왜냐하면 이 고분군의 축조 시기가 법흥왕을 전·후(前·後)하며, 고구려식 벽화가 등장하기 때문이고, 무덤의 양식이 적석묘 단계에서 석실묘 단계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특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부장유물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경향 또한 주목해야 한다.
    『隋書』 “新羅”傳에서는 신라의 주요 변화 요인에 대해 김진평(金眞平)에 이른 개황(開皇) 14년(A. D. 594: 新羅 眞平王 16) 이후에 있었던 고구려인들의 유입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보다 앞선 시기인 법흥왕의 때에도 주목할만한 변화들이 보인다. 이는 순흥 읍내리 고분군이 􋺷삼국사기􋺸에서 설명하지 않는 특징적 내용들을 드러내기 때문인데, 고구려와 연관 지을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변별성이 있다.
    기존의 주장에서는 순흥 지역의 지배권이 고구려와 백제 중 어느 나라에 있는지에 주목했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그 고분군이 축조된 시기를 조명하면서 신라 사회의 변화상에 관심을 갖는다. 이는 불교의 공인과 율령의 반포 그리고 의례 문화의 변화상에 연관된 신라 사회의 변화요인에 그 초점이 있다.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UCI(KEPA) : I410-151-26-02-094398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