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의약학
농수해양학
예술체육학
복합학
지원사업
학술연구/단체지원/교육 등 연구자 활동을 지속하도록 DBpia가 지원하고 있어요.
커뮤니티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와 전문성을 널리 알리고, 새로운 협력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네트워킹 공간이에요.
논문 기본 정보
- 자료유형
- 학술저널
- 저자정보
- 저널정보
-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119호
- 발행연도
- 2025.9
- 수록면
- 153 - 185 (33page)
- DOI
- 10.37331/JKAH.2025.09.119.153
이용수
초록· 키워드
본고는 5세기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변동 속에서 백제의 유송외교가 시기별로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살펴보았다. 선행연구에서는 5세기 동아시아 정세가 계속 변화하였음에도, 이를 일괄적으로 ‘대유송외교’로 파악하여 시기별 외교정책의 변화 양상을 간과하였다. 본고에서는 『삼국사기』와 『송서』 등 국내외 사료를 바탕으로 백제의 유송외교과정에 시기구분을 시도하여 이 변화가 단지 백제 내부의 상황 변화 때문만이 아니라 국제정세의 변동과 함께 작용했음을 밝혔다.
백제는 420년 유송 건국에 따라 동진에 이어 유송외교로 전환하면서, 420~440년대에 유송과 활발한 사행을 주고받았다. 당시 백제는 대고구려전 이후 발생한 왕위 쟁탈전, 권신의 전횡 등 혼란스러웠던 국내 정국을 안정시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따라서 유송으로부터 획득한 책봉호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해당 작호는 비유왕·개로왕·동성왕 대까지 이어져 이 시기 유송과의 관계를 시작으로 남조 중심의 외교정책 기조를 확립하였다.
450년대 비유왕과 개로왕은 선대의 유송 외교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450년대부터 시작된 고구려의 공격 등 국내 정세의 변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전쟁 관련 물품을 수입하고, 친정체제 구축을 위해 적극적으로 관작을 구하는 등 기존 유송외교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는 460년대 전개되는 외교양상과 비교해 고구려 전쟁을 앞두고 백제가 전개한 과도기적 유송 외교정책의 모습으로 이해된다.
유송의 2차 북벌 실패와 그에 따른 국력 약화로 국제정세의 주도권이 북위로 넘어간 상황이었다. 이에 백제는 유송과의 교섭 대신 실질적 군사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신라·왜의 우호관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백제는 469년 고구려에 선제공격을 감행하며, 양국(고구려·백제)의 관계가 공세로 전환되었다. 이에 백제는 472년에는 왕래가 없던 북위와 교섭을 시도하여 고구려 공격의 협조를 구하였다. 그러나 북위의 미온적인 태도와 함께 오히려 고구려를 자극함으로써 475년에 한성을 함락당하는 빌미가 되었다. 이후 백제는 제·양·진으로 이어지는 남조 왕조들과 긴밀한 외교관계를 구축하며, 다시 남조 중심 외교로 전환하는 양상을 보였다.
상세정보 수정요청해당 페이지 내 제목·저자·목차·페이지백제는 420년 유송 건국에 따라 동진에 이어 유송외교로 전환하면서, 420~440년대에 유송과 활발한 사행을 주고받았다. 당시 백제는 대고구려전 이후 발생한 왕위 쟁탈전, 권신의 전횡 등 혼란스러웠던 국내 정국을 안정시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따라서 유송으로부터 획득한 책봉호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해당 작호는 비유왕·개로왕·동성왕 대까지 이어져 이 시기 유송과의 관계를 시작으로 남조 중심의 외교정책 기조를 확립하였다.
450년대 비유왕과 개로왕은 선대의 유송 외교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450년대부터 시작된 고구려의 공격 등 국내 정세의 변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전쟁 관련 물품을 수입하고, 친정체제 구축을 위해 적극적으로 관작을 구하는 등 기존 유송외교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는 460년대 전개되는 외교양상과 비교해 고구려 전쟁을 앞두고 백제가 전개한 과도기적 유송 외교정책의 모습으로 이해된다.
유송의 2차 북벌 실패와 그에 따른 국력 약화로 국제정세의 주도권이 북위로 넘어간 상황이었다. 이에 백제는 유송과의 교섭 대신 실질적 군사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신라·왜의 우호관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백제는 469년 고구려에 선제공격을 감행하며, 양국(고구려·백제)의 관계가 공세로 전환되었다. 이에 백제는 472년에는 왕래가 없던 북위와 교섭을 시도하여 고구려 공격의 협조를 구하였다. 그러나 북위의 미온적인 태도와 함께 오히려 고구려를 자극함으로써 475년에 한성을 함락당하는 빌미가 되었다. 이후 백제는 제·양·진으로 이어지는 남조 왕조들과 긴밀한 외교관계를 구축하며, 다시 남조 중심 외교로 전환하는 양상을 보였다.
정보가 잘못된 경우 알려주세요!
목차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5세기 초·중반 국제정세와 백제의 유송외교 강화
- Ⅲ. 5세기 중·후반 국제정세 변동과 백제의 유송외교 변화
- Ⅳ.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참고문헌
참고문헌 신청최근 본 자료
UCI(KEPA) : I410-151-26-02-094323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