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불교학보 불교학보 제109집
발행연도
수록면
39 - 64 (26page)
DOI
10.18587/bh.2025.11.109.39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이 논문의 연구방법이 궁금하신가요?
🏆
연구결과
이 논문의 연구결과가 궁금하신가요?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본 논문은 메이지시기에 활동한 ‘일종해외선교회(⽇宗海外宣敎會, 이하 선교회)’의 조직 전개 과정을 분석하며, 일련종 교단사에서의 역사적 의의를 고찰하였다. 선교회는 부산 거류 신도의 요청으로 조선에 진출한 아사히 니치뵤(旭⽇苗, 1833~1916)가 1893년 8월에 사적으로 창립하였다. 아사히가 회장으로 명목상의 대표를 맡았으나, 실제 운영은 현지 포교를 담당한 가토 분쿄(加藤⽂敎, ?~1907)가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선교회는 출범 초기부터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했으나, 1897년 교단의 인가를 획득함으로써 공인된 조직으로 전환되었다.
인가 이후 선교회는 부산과 인천뿐 아니라 경성과 원산으로 포교 지역을 확대하고 승려를 파견하며 조직을 확장하였다. 특히 20세기 초 일본불교의 타 종파와 한국인 신자 확보를 둘러싼 경쟁 속에서 일부 한국 승려의 개종이 이루어지며 가시적인 성과를 낳았다. 이는 사적으로 출발한 조직이 타 종파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교단의 인가와 포교 활동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선교회는 여전히 아사히와 가토 개인의 역량에 크게 의존하였고, 재정난은 지속적으로 활동을 제약하였다.
1903년 가토가 회장직에 취임한 뒤에도 이러한 한계는 극복되지 못하였다. 가토는 1905년 일본 내 직책을 모두 사임하고 한국 포교에 전념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했으나, 1907년 급성 뇌막염으로 입적하였다. 그의 사망 이후 ‘일종해외선교회’라는 명칭은 사료에서 확인되지 않고 조직은 사실상 소멸하였다.
일련종 조선 포교사에서 널리 주목받은 인물은 사노 젠레이(佐野前勵, 1859~1912)였다. 그는 1895년 관장(管⻑) 대리 자격으로 도성출입금지 해제를 실현하였으나 활동은 일시적이었다. 반면 선교회는 사적 조직에서 출발하고 교단의 인가를 받아 포교소를 설치함으로써 이후 일련종 포교의 거점이 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 점에서 선교회는 일련종의 조선 포교를 제도적 차원으로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 조직으로 평가된다.
상세정보 수정요청해당 페이지 내 제목·저자·목차·페이지
정보가 잘못된 경우 알려주세요!

목차

  1. 한글요약
  2. Ⅰ. 서론
  3. Ⅱ. 선교회 창립과 초기 조선 포교 활동
  4. Ⅲ. 선교회의 활동 확대와 조직의 소멸
  5. Ⅳ. 선교회의 위상과 조선 포교사적 의의
  6. Ⅴ. 결론
  7. 참고문헌
  8. Abstract

참고문헌

참고문헌 신청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UCI(KEPA) : I410-151-26-02-094822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