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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명지대학교)
저널정보
미술사연구회 미술사연구 미술사연구 제49호
발행연도
수록면
245 - 272 (28page)
DOI
10.52799/JAH.2025.12.49.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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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신중국 건국 후부터 문화대혁명 직전까지의 17년(1949~1965)은 정치적 변화가 극심했던 시기로 미술계는 정치변화에 민감히 반응했다. 본 연구는 이 시기를 넷으로 나누어 방증선(方增先, 1931~2019), 주창곡(周昌穀, 1929~1985) 등 절파인물화가를 통해 중국화의 변화 양상을 살펴본다. 건국 초기(1949~1955) 중국화는 소련식 사실주의 영향 아래 변모했다. 정부 주도 하에 파벨 치스챠코프(Pavel Chistyakov)의 소묘법이 확산되었고, 행복한 인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인물화가 중시되었다. 방증선의 1955년 작 〈한알 한알이 모두 농민의 수고〉는 신중국의 소묘 교육과 임백년(任伯年)의 인물묘사법, 돈황벽화의 채색법을 성공적으로 결합된 예다. 백화제방·백가쟁명(1956~1957) 시기가 되면 중·소가 정치적으로 반목하면서 사실주의 일변도에서 벗어나 중국 전통회화가 다시 부활했다. 절강미술학원 교수 반천수(潘天壽)가 문인화 미학을 부활시키면서 먹과 여백, 서예적 필선이 강조되었다. 대약진운동 시기(1958~1962) ‘농촌과 공장으로 내려가기 (下鄕下廠)’운동이 실행되면서 미술의 대중화, 민족화는 한층 강화되었으며 중국화는 지켜야 할 전통 문화유산으로 평가되었다. 대약진운동 실패 후 주석이 된 유소기(劉少奇, 1898~1969)는 교조주의에서 벗어나 다양한 유파들이 미술계에 공존해야 함을 지시했다. 방증선은 안휘 성에서 만난 탄광노동자를 그린 〈덕초동지의 초상〉에 대사의(大寫意) 화조화에서 유래한 대담한 발묵법을 사용함으로써 화조화 기법을 인물화와 결합했다.
문혁 직전(1963~1965) 미술은 더욱 정치화되었다. 수묵화는 ‘흑화(黑畵)’로 폄하되었고 절파 화가들은 정치적 소재를 선택해 서사적 화면 구성과 밝은 색채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절파는 각 시기가 요구하는 회화 미학을 전통과 성공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신중국의 인물화풍을 창조했고, 문혁이 끝나고 1980년대 개방 개혁 시대에 전통 수묵화 미학이 되살아날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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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Ⅰ. 머리말
  2. Ⅱ. 1949~1955 : 중국화 혁신과 절파 화풍의 형성
  3. Ⅲ. 1956~1962 : 전통 회화 미학의 부활과 절파 화풍의 성숙
  4. Ⅳ. 1963~1965: 수묵화 비판과 절파 인물화의 정치화
  5. Ⅴ. 맺음말
  6. 참고문헌
  7. 국문초록
  8. Abstract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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