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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88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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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이 논문은 『맹자』의 이념이 조선 초기 정치에 반영된 양상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파악하려는 연구이다.
    조선 초기에는 사서가 과거시험 과목과 경연 교재로 채택되면서 사서를 중심으로 한 유교 텍스트가 널리 보급되었다. 유학의 군주관에 따르면, 왕조국가의 세습 군주는 수신·수기에 힘써 유학자 관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맹자』의 격군론은 유학자의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고, 군신공치의 이념적 근거가 되었다. 조선 초기 사헌부와 사간원의 대간은 격군의 직무를 수행하며 간언을 통해 군주 마음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하였다. 이러한 간언 행위는 단순한 간쟁이 아닌 충군의 기능으로 자리매김되었다. 특히 성종대에 이르러 경연이 대간 언론 활동의 무대로 확장되면서 대간은 왕권에 대한 체계적인 감독과 더불어 군주의 심성적 결함을 즉시 시정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맹자의 격군론은 유학자들에게 언론 활동의 정당성을 부여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주체성을 강화하는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한편, 훈친의 살인죄 사건에서 공의와 사은이 대립했을 때, 대간을 비롯한 유학자들은 『맹자』의 법 집행 논리를 통해 친친과 존존의 윤리적 긴장 속에서 공법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강조하며 공정한 처벌을 주장하였다. 비록 군주의 사적인 정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었으나, 이들의 노력은 법의 공정성을 추구하고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결국 조선 초기 대간을 비롯한 유학자들은 사서오경, 특히 『맹자』를 국가 운영의 이념적·제도적 기반으로 삼고 주자의 『맹자』 해석을 수용하여 군주를 정점으로 한 집권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언론권을 강화함으로써 정치 운영의 주체로서의 위상을 확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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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151-26-02-094698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