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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하극상(下剋上)이 매우 나쁘다고 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역사적으로 언제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우리 역사에서 고려 후기의 무신정권 성립부터 여말 선초까지 200여 년 이상은 ‘하극상의 시대’였다. 그것도 국가 권력의 최정점 영역에서 하극상이 계속해서 발생한 시대였다. 당시의 이러한 상황은 권신의 수하가 백성의 토지를 탈점하나 지방관이 이를 제재하지 못하는 심대한 사회문제를 파생시킨다. 그래서 조선왕조는 이미 태조 시기부터 지방관 위상 제고에 힘쓴다. 특히 세종 2년(1420)에는, 수령은 아비와 같은 존재이기에, 이러한 수령을 부락민이 고소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허조의 주장으로 해당 지역 백성이 통치자인 수령을 고소하는 것을 금지하는 부민고소금지법이 제정된다. 이 법의 제정으로 수령의 부정을 고소한 백성만 처벌받는 불합리한 일이 생기자, 대간의 문제 제기도 영향을 미쳐 세종 13년(1431) 및 세종 15년(1433)에 이 법에 관한 재론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때에도 세종은 부민고소금지법을 그대로 유지하되, 억울함을 호소한 소송만을 다시 결정하고 수령이 오결을 범한 죄는 묻지 않는다고 결정을 내린다. 그 결과 조선 전기에 최대의 사회문제였던 방납과 관련해서도, 오결에 대한 재심 청구 이외에는 백성이 수령을 고소할 수 없게 된다. 그 후 이 법은 경국대전에 등재되어, 세조, 예종 초기를 제외하면, 조선왕조 내내 지속되는데, 이는 결국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거스르는 하극상은 나쁘다고 하는 인식을 낳아, 이것이 지금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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