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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동국대학교 문화학술원)
저널정보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동국사학 동국사학 제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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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본고는 16세기 소원 제도의 운영 양상을 살펴보고, 제도의 바깥에 있으면서도 하정상달이라는 명분 아래 통용되고 있었던 격쟁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16세기 들어 격쟁은 백성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표출하는 주요한 창구로 인식·활용되었고, 때로는 백성들 스스로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격쟁을 활용하고 있었다. 중종 대 소원 제도의 특징은 가전진소와 격쟁이 부각된다는 점이다. 가전진소및 격쟁은 신문고처럼 행정적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자신의 원억이 왕에게 닿을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전진소는 왕의 일정을 미리 인식하고 준비했다는 점에서백성들의 능동적 제도 활용이 드러난다. 격쟁은 후원과 가까운 신무문에 집중되거나 나무 등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경향이 드러났다. 이러한 격쟁의 경향은 왕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였다. 이밖에 관료들의 실수에서 백성들의 원억이 발생한다고 인식했던 중종의 태도 또한 가전진소 및 격쟁 증가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백성들의 원억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한 채, 수령·감사 등의 축소·은폐·봐주기 등으로 축적된 지방민의원억들이 도성으로 몰려들었고, 이는 곧 사헌부의 업무 과중과 원억 해소의 지체로 이어져, 가전진소와 격쟁의 증가를 부추겼다. 한편, 부민고소금지법은 그 처벌이 전가사변으로 강화되었다. 君民의 분의를지켜야 한다는 명분론이 득세하면서, 수령과 부민의 관계를 君民으로 여기는 인식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수령과 부민의 관계를 君民으로 여기게 되면서, 부민고소금지법 위상은 한층 더 강해졌다. 명종 대는 부민고소금지법의 강화로 인해소원 제도 활용은 감소한 데 비해 격쟁은 지속적으로 이용되었고, 격쟁의 장소 또한 궐내 격쟁이 일상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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