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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태동고전연구 태동고전연구 제5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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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 138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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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 조일 간의 외교사절인 통신사는 양국의 우호증진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하였다. 일본 지식의 생성창구로서의 통신사행은 탐색과 대결, 상호이해 등의 타자 인식에 있어서 조선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무진(1748) 사행의 직전 사행인 기해(1719) 사행에서 일본 문인키노시타 란코(木下蘭皐)는 조선 측 제술관(製述官)과 삼사 서기(三使 書記)에게 직전 사행인 기해 사행에서 통신사와의 인연을 소개한다. 구연(舊緣)과 숙연(宿緣)을 통해 통신사와의 어색함과 긴장을 풀고 필담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는 효과를 얻으려 했다. 고대 한국의 역사적 인물들을 언급하면서 통신사와의 직접적인 인연을 거론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 문인 시노 료는 제술관 박경행에게 일본과 관련되는 여러 박씨들을 들며 친근감을 조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필담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는효과를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원래 의도를 달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진 사행 필담에서는 단군과 왕인과 관련된 필담이 보인다. 왕인과 관련된 필담은 주로일본 문사들이 조선 문사들에게 왕인에 대한 기록에 조선의 서적에도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신묘(1711) 사행 중 일본 문사가 제술관 이현에게 그에 관해 질문하자, 그는 “왕인이 『천자문』과 『논어』를 가져와 일본에 문자가 있게 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고 답했다. 그런데 일본 문인들이 이 필담의 내용에 근거하여 이후의 사행에서도 조선에 왕인의 기록이 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조선의 책에도 왕인의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일본 문사들의 과도한 기대의 투영으로 인하여 오해가 발생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8세기의 일본 문사들은 조선의 지식을 수집하고 그것을 습득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대의 삼국과 일본의 관계에 관련된 역사 기록, 삼국의 역사와 언어 등에 관심을 나타냈다. 일본 문사들은 삼국의 기록 중에서도 『일본서기』에 나타나는 가야 제국(諸國)의 국명에 대해서 묻기도 했으며, 한국 고대사와 일본 학문의 시원(始元)과 관련이 있는 단군과 왕인에 대해 묻기도 했다. 그들은 일본 역사와 관련된 기록이 조선의 서적에도 있는지를 조선 문사에게 확인하려고 했던 것이다. 일본 문사는 조선 문사와의 필담을 통해 자신의 지식을 조선 문사들에게 인정 혹은 확인받고자 했다. 일본 문사가 조선 문사와 필담교류를 통해 얻고자 한 것과 조선 지식 습득의 이면에는 일본 고대 역사에 대한 증거를 탐색하고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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