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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韓國은 15세기에 세계 최초로 杜詩를 自國語로 完譯한 나라이다. 이 글은 선학들의 성과를 바탕으로 필자의 一知半解를 덧붙여 그린 어렴풋한 윤곽일 뿐이지만, 그 강조점이 선학들과 다른 점이 있다.
杜甫는 中唐 이후에 詩壇에서 주목받기 시작하여 北宋代에 ‘詩聖’으로서의 지위가 굳어졌다. 한국 한시사에서도 杜甫가 典範이 되는 시인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高麗 高宗(在位 1213~1259) 연간부터이며, 李奎報(1168~1241)는 100여 수가 넘는 排律을 지은바, 이는 두보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한시사의 각 시기별로 杜詩 수용에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다. 우선 世宗의 命으로 엮은 纂註分類杜詩 (1444 이후)와 成宗 연간에 이루어진 杜詩諺解 (1481 이후)의 간행이 중요하다. 그리고 世宗의 訓民正音 創製(1443)와 頒布(1446) 역시 杜詩 수용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조선의 16세기와 17세기는 唐詩가 再發見된 시기로 한편으로 樂府風의 邊塞詩와 香奩詩가 유행하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 長篇 排律이 盛行하면서 극단적으로 긴 작품들이 출현하기도 하였다.
이 글에서는 15세기~17세기 한국 한시 중 杜甫를 가장 잘 배운 작품으로 金宗直(1431~1492)의 七言律詩 1首와 盧守愼(1515~1590)의 五言律詩 1首, 李安訥(1571~1637)의 「四月十五日」을 꼽아 자세히 읽어 보았다.
18세기 이후에는 李植(1584~1647)이 撰한 纂註杜詩澤風堂批解 가 중요한 杜詩 학습서가 되었다. 또 正祖(在位 1776~1800)가 편찬케 한 杜律分韻 이나 杜陸千選 은 모두 律詩 위주의 選集이다. 조선의 18세기~19세기에는 특히 七言律詩가 선호되었으며, 杜甫의 작품이 중요한 전범 역할을 하였다.
한국에서 漢文學 전통은 1894년 甲午更張 때 科擧制가 폐지되면서 공식적으로 終焉을 告하였다. 1945년 光復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새 나라의 ‘國語’와 ‘國文’ 교육이 시작된바, 한국의 국어·문학 교과서에는 오랜 기간 杜詩諺解 에 수록된 작품이 실려 있다. 곧 杜詩가 한국어와 한국 문학을 가르치는 중요한 텍스트가 되어, 현대 한국인의 정신을 살찌우는 데 공헌한 것이다. 嘉藍 李秉岐(1891~1968) 및 東國大學校에서 敎學 활동을 한 梁柱東(1903~1977)-李炳疇(1921~2010)의 공헌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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