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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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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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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사학연구회 학림 학림 제5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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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본고에서는 조선 초기 ‘정치범 연좌’와 ‘전가사변 연좌’ 판례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연좌 운영이 조선의 집권체제 정비 방향과 연동하고 있음을 검토하였다. 정치범 연좌가 기존에 존재하는 『대명률』이라는 법령 체계가 갖춰진 가운데 조선 초기 정치적 변동에 따라 판례를 조정하는 과정이었다면, 전가사변 연좌는 북방 개척이라는 정책적 필요성에 따라 법외의 방식으로부터 점차 판례 축적을 통해 법령을 창출하는 과정이었다. 조선 초기 정치범 연좌 적용의 양상은 시기별로 변화하는 양상을 띠었다. 태조·정종·태종 대의 1·2차 왕자의 난, 민무구 옥사에 연루된 종친·공신 세력에 대해서는 연좌가 관대하게 적용되었으나, 세조 대에 접어들면서 계유정난, 단종복위운동, 이시애의 난 등 사건에서는 아들 사형, 부녀자 위비, 3촌 친족 및 사위 안치 등 강한 연좌를 적용하였다. 세조 대에 들어 왕권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이 제기됨에 따라 정치범 연좌가 확대·강화된 것이다. 조선 초기 전가사변 연좌는 범죄자의 일가족 전체를 평안도·함경도로 옮겨 살도록 하는 방식으로 등장하였다. 세종 대에는 호적기망·관장가해·유언 유포 등 다양한 범죄를 대상으로 시작되어 세조 대에는 소나무 벌목·관물 절도·친족 간통 등의 범죄까지 포괄하였다. 성종 대에는 도형·유형을 전가사변으로 치환하게 되었고, 사형감면·유형 대상을 일괄 전가사변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법제화되었다. 그 처벌의 범위도 간통·친족 갈등·불교식 장례 등 개인적 풍속에까지 확대되어 갔다. 15세기 후반 전가사변 연좌는 북방 개척이라는 정책적 목표 아래 점차 공식적으로 법제화되면서 제도의 한 축이 되었다. ‘정치범 연좌’와 ‘전가사변 연좌’는 출발 지점과 법적 근거가 상이했음에도 불구하고, 각기 상호 관계를 맺으며 발달하였다. 이 두 가지 연좌 방식은 ‘가족공동체성 유지’·‘연좌 처벌의 확대·강화’라는 공통된 맥락에서 변화하였다. 조선은 가족을 국가의 기초 운영 단위로 상정하였고, 범죄자 역시 가족이라는 사회적 범주 속에 결합시킬 필요가 있었다. 범죄자의 가족공동체를 유지하게 함으로써 배치된 지역에서 이탈하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영구히 정착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러한 연좌 정책은 왕권 안정, 북방 방비, 강상 윤리 보급이라는 목표에 부합하면서 조선초기 집권체제 유지에 기여하였다. 정리하자면, 조선 초기 정치범 연좌·전가사변 연좌는 상이한 법적 토대와 정책적 기원에서 추진되었으나, 조선 초기 국가의 집권체제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정비되어 갔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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