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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본 연구는 기독교가 베트남전을 격려하고 다시 반공의 전위로 나서게 된 배경과 동인 그리고 반공 담론 시장에서 ‘제2의 특수’를 누린 과정 등을 추적한다. 이는 기독교의 위기 탈출 및 세력 확장 전략과 반사회주의 담론 형성 사이의 연동 관계를 밝혀내는 데 목적이 있다. 개신교가 반사회주의 담론 형성을 주도했던 배경에는 이념적 차이보다 사회 권력의 약화나 기반 상실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감이 더 크게 작용한 측면이 있다. 정치 환경의 변화와 내부 균열 여파로 성장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상황에 직면하자, 베트남전 파병을 돌파구로 삼았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의 베트남전 실패로 국제 여론이 악화되고 반전 운동이 절정에 이르자, 국제사회의 변화된 흐름에 합류하기보다 이를 되돌리고자 반공의 ‘민족 주체화’를 선언했다. 1970년대로 진입하며 7.4 남북공동성명까지 발표되자, 반공 담론의 변주로서 북한 선교론을 들고 나왔다. 즉, 공산권을 ‘제거 대상’이 아닌 ‘교화 대상’으로 재설정한 것이다. 북한 선교론은 ‘흡수통일론’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과 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열망이 높아지자, 북한 땅과 교회를 되찾자는 ‘교회수복론’으로 반공 담론의 강화를 꾀했다. 1980년대 북과 해외 기독자들이 남북 화해를 위한 통일 대화를 추진하자, 북한에 교회와 기독교 신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위장교회론’으로 맞섰다. 개신교가 주도한 반공 담론의 확산과 변주의 과정은 사회주의 이념과 기독교가 전파해 온 반사회주의 담론 사이에 이념적 허구가 필연적으로 존재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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