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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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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117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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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 대통사는 대통(大通) 원년(527)에 웅진에 창건한 사찰이라고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대통사의 창건 시기를 527년으로 보았다. 아울러 대통사터로 전해 오는 공주시 반죽동 일대에 대한 발굴 조사 결과 대통사와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유물이 대단히 많이 출토되어 『삼국유사』의 기록을 입증해 주고 있다.
    그런데 반죽동 일대에서 출토된 유물은 그 이전의 백제 유적에서는 출토된 적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기와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더구나 수막새 기와의 제작 기법은 중국 남조(南朝)의 제와술(製瓦術)과 동일한 기법으로 제작된 것이 확인되었다. 그런 점에서 대통사는 중국 양나라 기술자의 도움으로 창건된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백제가 목탑과 같은 중층 건물을 짓고, 또 거기에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하기 위해서는 양나라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것이다.
    이렇게 양나라의 기술적인 협력하에 대통사가 창건된 것이라면 535년을 주목하고 싶다. 535년에 대동(大同)으로 개원(改元)하였기 때문이다. 백제는 534년에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는데, 그렇다면 양나라의 기술자가 535년에 백제에 와서 대통사 건립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한다. 대동과 대통은 발음이 서로 비슷한 만큼 대동 원년에 건립한 것을 대통 원년에 건립한 것으로 착각한 결과 『삼국유사』와 같은 기록이 남겨지게 되었을 것이다.
    사비로의 천도 직전에 웅진에 대통사를 창건한 것은, 그것이 무령왕의 원찰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백제 최초의 원찰은 지금까지 알려진 부여 능산리 사원이 아니라 공주의 대통사라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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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151-26-02-096018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