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의약학
농수해양학
예술체육학
복합학
지원사업
학술연구/단체지원/교육 등 연구자 활동을 지속하도록 DBpia가 지원하고 있어요.
커뮤니티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와 전문성을 널리 알리고, 새로운 협력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네트워킹 공간이에요.
초록·키워드
본고에서는 왜국(일본)에 있었던 소위 “고려왕(고마노코니키시)”씨의 존재에 대해 검토하였다. “고려왕”씨의 성립은 703년 고려약광(⾼麗若光)에 대한 ‘王’姓하사에서 비롯되었으나 동시대에 존재하고 있던 백제왕씨나 신라 ∙ 당의 고구려왕족에 대한 처우(“고구려왕” 혹은 조선왕 책봉) 등과 비교하면 몇 가지 차이가 보인다. 고려왕씨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 사항에 집약되어 있다. 첫째 일본 내에서도 고려왕씨의 성립은 백제왕씨보다 늦고 왜국 왕권에 대한 內臣化의 시기도 백제왕씨와 동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둘째 고려왕씨의 성립 이후 이렇다 할 존재감 내지 족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사료에서 아예 자취를 감추어버리는 점, 셋째 그 성립이 신라 ∙ 당의 경우에 대비해 보더라도 약 30년 정도의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우선 7세기 후반기의 왜국 왕권에게 고구려왕의 후계 문제는 신라 ∙ 당의 경우와는 달리 국내적으로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못하였다는 점과 동 시기 신라가 이미 고구려왕을 책봉해 있었다는 점 등에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고 분석하였다. 그리고 703년에 즈음하여 고려왕씨를 창출한 것은 기존의 통설적 견해대로 대보율령의 제정으로 백제왕씨와 더불어 고려왕의 복속을 가시적으로 창출해 낼 필요성도 제기된 탓으로 볼 수 있다. 고려왕씨의 존재감 소멸에 대해서는 발해와의 통교가 이루어지면서 발해왕의 고려왕 승계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일본 내부의 존재감 내지 존재의 필요성 자체가 급속히 저하되어 간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정리하였다.
본문·목차
인공지능 문자 인식 모델을 통해 추출된 텍스트로, 일부 오타나 오류가 포함될 수 있으나 지속적으로 개선 중입니다.
오류를 발견하셨다면 해당 부분을 드래그한 후 ' 를 통해 신고해주세요.
오류를 발견하셨다면 해당 부분을 드래그한 후 ' 를 통해 신고해주세요.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UCI(KEPA) : I410-151-26-02-096302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