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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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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9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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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이 논문은 무진년(1748) 제10차 통신사의 귀로에서 발생한 갈등에 쓰시마번이 어떻게 대응하였는지를 사행록 및 신사기록을 근거로 분석하여 조명하였다.
    주요 갈등은 크게 세 가지 문제에 집중되었다. 京都와 大坂에서의 下⾺札 설치 장소 변경, 大坂 승선 날짜와 기선을 갈아타는 장소, 그리고 대마도 정박 장소이다.
    하마찰 위치가 선례와 다르다는 문제로 다툼이 벌어지자, 쓰시마번이 통신사행렬을 강제로 말에서 내리게 하였고, 부사 남태기가 새벽까지 가마에 갇혀서 숙소에 못 들어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정사 홍계희는 쓰시마번의 무례함을 직언하며 조속한 승선을 요구하였다. 쓰시마번주 宗義如는 번사들의 무례함은 조사하여 처벌하겠으나, 막부가 정한 일정을 따라야 한다며 조기 승선 요구를 거부한다. 최종적으로 삼사는 쓰시마번의 지시를 따랐지만, 끈질긴 요구 끝에 大坂 승선일을 하루 앞당기는 타협을 얻어냈다.
    쓰시마번은 삼사가 지시를 따르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에 대비하여 삼사의 서면 약속, 즉 手形을 요구하였고, 大坂에서는 실행되지 못하였으나, 대마도에서 정박 장소에 관한 지시에 삼사가 불응하자 실제로 手形을 얻어냈다.
    갈등이 발생하면 양측 모두 자신들의 주장을 관통시키려고 하였다. 삼사는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 쓰시마번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증폭하였고, 쓰시마번은 ‘막부의 지시’를 앞세우는 것과 동시에 땜질식 변명으로 상황을 외면하였다. 삼사가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경우, 쓰시마번은 사고 발생의 위험에 대비하여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삼사에게 手形을 요구하였다.
    전쟁이나 약탈 등에 비하면 훨씬 평화로운 교류가 이루어진 제10차 통신사였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조선과 쓰시마번의 관계는 불신과 불만이 기조를 이루는 불안정한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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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151-26-02-0963085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