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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본고는 조선전기의 성리학자인 한훤당 김굉필의 도덕론을 고찰하였다. 그는 근엄한 자세로 스승 김종직 보다 더욱 더 유학에 파고 들어가 성리학의 이론보다 실천에 더욱 힘을 쏟았다. 유학의 근본목적인 수기치인에 관련된 성리학적 의리를 이전의 어느 때 보다 실천하려 하였고 도덕교육에 대해서도 신성한 사명을 지니고 가는 곳마다 학교를 일으켜 유학과 문교를 흥기시키고 조광조김안국 등의 학자를 길러내었다. 15세기 후반 들어 성리학적 의리와 도덕을 실제 구현하려는 정신이 이전의 어느 때보다도 강하였으므로 이때에 이르러서 비로소 성리학의 도학화가 뿌리 내렸다. 수기 위주의 도학정신이 이 당시 소학의 중시로 드러났고, 치인 위주의 도학정신이 지치주의 운동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도학정신의 구현을 담당한 것이 사림들이고 그 의리와 도덕의 역행실천자로서 중심인물이 바로 김굉필이었다. 그는 도학과 그에 따르는 도덕의 실천자로서 도덕교육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자임의식으로 그에 의해 도학과 그에 따르는 도덕교육이 비로소 조선사회에 정착하였고 사화라는 커다란 피해를 입고서도 조선중기 이후 정치주도세력으로 자리잡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면서 도덕적으로 실천하였다. 그는 성리학의 실천철학인 도학을 강조하였고 그것의 도덕적 실천은 『소학』의 중시로 나타났다. 김굉필의 학문활동은 대체로 도학적 원리의 구명과 도덕적 실천적 가치의 구현에 편중되었다. 그는 특히 도덕교육에 대한 열의가 가득하였다. 『소학』은 고려 말에 전래되어 교화의 바탕이 되었으며 조선 왕조가 교육을 위하여 법제적으로 강요하였으나, 문장에 치중해 실천에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후 15세기 말에 김굉필에 이르러서 비로소 『소학』의 실천궁행과 학문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김굉필은 『소학』을 생활 철학으로 삼아 실천함으로써 도학의 방향을 제시하였다.그의 도덕론의 일단은「추호가병어태산부」,「한빙계」 등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추호가병어태산부」에서는 세상사람들이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좇는 것을 경계한 것으로 대롱 속으로 하늘을 보며 송곳으로 땅을 가리키는 우둔함을 버리고 시시비비를 초월한 정신으로 인륜도덕의 질서를 바로 잡으려는 의지를 드러내었다.「한빙계」는 옥계 반우형이 김굉필에게 가르침을 청 한데 대해 수기와 접물의 방법을 써준 것으로 그의 소학적 도덕정신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한빙계」의 조목들에는 다스림의 행동에 앞서 수기의 행동이 먼저 이루어 져야 한다는 그의 생각이 담겨져 있다. 『소학』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수행자적 고통이 따른다. 김굉필은 소학적 실천을 철저히 실천함으로써, 당시 이론에만 치우치기 쉬운『소학』교육을 위기지학의 차원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김굉필은 『소학』교육의 중요성을 의식하였다는 점에서, 도덕의 기본자세를 확립한 사표로서 길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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