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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윤리학회(윤리연구) 윤리연구 윤리연구 제1권 제59호
발행연도
수록면
377 - 394 (1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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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합작운동(1946.5-1947.12)은 해방 후 통일민족국가 수립이라는 당시 한민족 최대의 과제를 실천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1946년 5월을 전후하여 시작된 좌우합작운동은 내적인 필요, 즉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자 했던 좌우민족주의세력의 융합으로 인해 추진된 면과, 외적인 조건, 즉 제1차 미소 공위 결렬 이후 미국의 대한정책이 중도파에 의한 임정수립이라는 정책으로 전환됨에 따라 좌우합작운동을 적극 후원한 결과 김규식여운형을 중심으로 추진되게 된다. 1946년 10월 발표된 합작 7원칙은 당시 통일민족국가 수립이라는 민중들의 열망과도 합치하고 있었다. 이후 좌우합작운동은 남북통일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미소 공위 재개촉진 움직임으로 발전하였고, 이 과정에서 중도파 세력이 광범위하게 결집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한반도 점령 당사국인 미소 양국의 상충된 국가이익에 따른 냉전논리와 미군정 정책의 미숙, 그리고 일제 식민통치 이후 계속된 국론의 분열과 파쟁성에 의해 좌우합작운동은 좌절되고, 한반도문제가 유엔으로 이관되어 결과적으로 남북 분단국가 탄생이라는 최악의 결과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의 좌우합작 실패원인과 오스트리아의 좌우합작 성공요인을 한국의 실패원인 도출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고, 두 사례를 역사적 조건, 구조적 요인, 행위자 요인으로 나누어 비교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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