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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 자료유형
- 학술저널
- 저자정보
- 발행연도
- 2005.6
- 수록면
- 160 - 174 (15page)
이용수
초록· 키워드
동독의 시민운동은 독일통일을 가능케 한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40여년간 여론형성의 자유를 경험해보지 못한 동독시민들이 수만 명씩 거리로 쏟아져 나와 사회의 민주화와 자유를 외치며 평화로운 촛불시위를 벌이고, 결국엔 부패하고 무능한 동독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70, 80년대부터 교회를 중심으로 꾸준하게 평화 및 인권운동을 펼쳐온 시민운동가들의 조직적인 활동과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동독시민운동의 활약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처음 시행된 민주주의 선거에서 시민운동의 공식적 후계자라 할 “시민운동연합”은 겨우 2,9%의 지지만을 얻었던 것이다. 반면 서독의 정당들로부터 자금력과 선거마케팅 전략을 지원받은 동독 사민당, 기민당 등의 정당들은 쉽고 빠른 통일을 공약으로 내세워 동독민심을 장악했고 많은 시민운동가들 역시 이러한 정당에 흡수되었다. 그리하여 통일 이후 동독시민운동은 더 이상 여론을 주도하고 결집하는 단일한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지 못한 채, 현실정치의 무대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한때 동독의 집권정당을 위협하고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제시했던 시민운동이 왜 그렇게 빠른 속도로 분열된 채 무력해졌을까? 이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1989년 가을에 활발했던 시민운동의 특징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의 ‘전환기’를 주도한 동독시민운동은 하나의 통일된 집단이 아니었고, 좌파부터 우파까지, 기독교 교회운동으로부터 사회주의통일당 내부의 개혁파까지 상이한 정치적 성향과 다양한 이력의 인물들을 총망라한 ‘임시’ 운동연합의 형태를 띠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하나로 결집시킨 유일한 요소는 동독 내부의 개혁에 대한 요구였다. 그러나 개혁의 대상이었던 독재정당이 사라지고 예상치 못한 속도로 통일이 이루어지고 난 후, 동독 시민운동가들은 낯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국가체제 안에서 새로운 사회화와 정치화의 과정을 겪어내야 했으며, 그 이후 각자의 정치적 관심과 이해에 따라 서로 다른 정치 노선을 선택하거나, 정치의 영역을 떠나 자신의 직업으로 되돌아갔다. 보수적 성향의 기민당, 사회주의적 사민당, 진보적인 녹색연합당 등 현실정치의 다양한 진영에서 동독시민운동 출신의 인물들이 활동 중이다. 특히 동독과거청산과 관련된 영역에서 동독시민운동가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환경 및 평화운동, 동유럽과 유고 지역 등의 인권운동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언론, 교육, 문화예술 등의 분야에서도 동독출신 운동가들의 사회참여가 계속되고 있다.
동독의 시민운동은 현실적인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지만 시민들의 자발적인 사회참여가 한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에 대한 역사의 증인으로서, 또한 현재 독일이 겪고 있는 갈등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건강한 시민의식의 담지자로서 다양한 방식으로 통일 독일의 역사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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