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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 자료유형
- 학술저널
- 저자정보
- 발행연도
- 2008.6
- 수록면
- 151 - 170 (20page)
이용수
초록· 키워드
눈과 인식의 관계는 이미 소크라테스 이전의 시대에서도 주된 관심사로 등장한다. 플라톤에 이르러 눈은 ‘육체적인 눈’과 ‘정신적인 눈’이라는 서로 화합할 수 없는 두 갈래의 방향으로 뚜렷하게 나누어지면서 인식의 문제 또한 새로이 조명된다. 정신적인 눈에서 참된 인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플라톤은 감각적 혹은 육체적인 눈을 폄하하는 동시에 육체와 인식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거부한다.
‘봄’ 혹은 ‘보다’에 대한 철학이 플라톤 이후로 어떠한 방식과 내용으로 발전을 해 왔던 간에 ‘보다’라는 표현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크게 두 가지 맥락에서 이해된다. 하나는 시각적인 자극 즉 주위의 사물들을 감각적으로 수용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인식’이라는 추상적인 개념과 결부된다. 여기서 ‘보다’는 참과 거짓을 논하게 되는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육체적인 경험으로서의 ‘봄’에 대한 참과 거짓의 논란은 플라톤 이래로 육체와 이성, 감각과 정신에 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가시화 시키고 담론화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감각적인 경험으로서의 ‘봄’을 단호히 거부하고 정신적인 눈을 추구하는 그의 태도에서 육체적인 경험을 통해서는 결코 참된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는, 즉 이성에 의해서만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분명하게 읽어낼 수 있다.
이와 같은 플라톤의 사상은, 비록 그 내용과 양상을 달리하더라도, 칸트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플라톤과는 달리 칸트는 우선 육체적인 경험의 가치를 인정하고 육체와 이성의 통일 속에서 종합 진리를 구하고자 한다. 객관적인 인식에 도달하기 위한 감각적인 경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그의 이론에서 그러나 육체적인 눈, 즉 감각적인 경험이 인식의 원천으로 풀이되는 것은 아니다. 육체적인 세계를 벗어난 눈을 “가장 순수한 눈”으로 표현하는 칸트에게서 육체적 경험보다는 이성을 앞세우는 그의 입장을 엿보게 된다. 또한 그의 저서『순수이성비판』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의 인식론은 거의 정신적, 논리적인 영역에 머무르고 있다.
정신적인 눈과 인식의 밀접한 관계를 밝히며 이성을 강조했던 플라톤, 칸트와는 달리 괴테는 육체적인 눈을 통한 지각과 정신적 활동의 상호작용을 인식의 근원으로 파악함으로써 또 다른 하나의 담론을 낳는 전기를 마련한다. 괴테에 의하면 주위의 현상들을 직접 지각하는 눈은 자연을 체계적으로 인식케 하는 동인으로서 무엇보다도 인간이 자신의 경계에서 벗어나 세계를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이과 같은 사상은 그의『색채론』에서 살펴볼 수 있다.
소설『현혹』(1935/36)에서 ‘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카네티는 소설의 주인공 킨 박사를 예로 플라톤과 칸트의 이성주의를 전면적으로 거부한다. 육체의 세계를 거부하며 이성과 논리가 지배하는 추상적인 학문에 몰두하는 킨은 감각적인 눈으로 지각되는 모든 현상들을 외면하며 오로지 이성에 의해 인간과 사물을 통제하려는 인물이다. 주위환경은 물론이고 자신조차 이성에 의해 조정당하는 킨은 종국에는 현실을 인식하는 능력은 물론 더 나아가서는 자아를 상실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킨의 자아상실은 자살로 이어진다.
육체적인 경험으로서의 눈을 현실인식의 출발점으로 삼는 카네티의 견해는 괴테에 가깝다. 카네티의 ‘봄’에 대한 이해는 그러나 칸트의『순수이성비판』혹은 괴테의『색채론』과 같이 하나의 이론으로 정리되어 있지는 않다.『현혹』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카네티의 사상은 그의 문학 혹은 자서전적인 글에서 읽어낼 수 있을 뿐이다.
플라톤, 칸트, 괴테와 같이 잘 알려진 사상가들이 펼치는 ‘봄’에 대한 견해를 이해하는 것은 단지 지식의 축적보다는 다양한 사고들의 단초들을 경험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특히 정체성의 위기가 심각하게 대두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소위 자아위기와 인식위기라는 염세주의적인 문화현상이 성행하던 시대에 카네티는 인간의 육체적 경험을 새로운 정체성 확보를 위한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카네티의 ‘봄’에 대한 견해가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과 함께 했다는 것은 그의 사상을 탐색해 볼만한 의의를 제공한다. 카네티는 무엇보다도 그림을 통해서 ‘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관찰자로서 브뤼겔의 ≫여섯명의 장님들≪을 묘사하는 카네티는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그림에 대한 지각이 인식으로 이어지는, 다시 말해서 지각이 곧 인식을 의미함을 피력한다. 정신적 인식이 바로 지각적 경험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는 카네티의 주장은 후설의 눈에 대한 현상학적 이론과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자세한 비교는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둔다. 또한 감각적인 눈의 경험의 문제에 있어서 카네티의 태도가 고트프리트 켈러의『녹색의 하인리히』에 나타난 지각과 인식론에 상당히 접근하고 있음을 본 논문은 보여주고 있다.
컴퓨터 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시각적 매체들은 ‘봄’에 대한 새로운 테마들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눈을 통한 지각적 경험과 인식의 문제는 계속적으로 흥미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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