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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 자료유형
- 학술저널
- 저자정보
- 발행연도
- 2008.11
- 수록면
- 227 - 261 (35page)
이용수
초록· 키워드
3ㆍ1운동기 가장 먼저 뿌려진 지하신문은 천도교측이 만든 『조선독립신문』이었다. 『조선독립신문』1호는 민족대표의 독립선언과 체포 소식을 담고 있었다. 2호부터 4호까지의 신문은 민족대표의 체포 소식, 임시정부가 수립될 예정이라는 소식, 3월 5일의 남대문정거장 앞의 학생 시위 소식 등을 전하였다. 5호부터 9호까지의 신문은 운동의 후속 소식을 전하였는데, 특히 3월 22일 서울에서 다시 일어난 시위 소식을 상세히 전하였다. 배재고보와 보성전문 교사가 만든 『조선독립신문』10~15호 역시 서울에서의 3월 22일 시위 소식과 경찰의 가혹한 탄압 소식을 전하였다. 『조선독립신문』은 3월 초부터 3월 말까지 모두 16호가 발간되었다. 『조선독립신문』은 초창기에는 운동 주체 측의 운동에 대한 구상과 운동의 진행상황을 전달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이후에는 운동의 진행상황을 전달하면서 운동을 독려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조선독립신문』이 발간된 뒤 청년ㆍ학생층은 이를 본뜬 지하신문들을 우후죽순처럼 발간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각성호 회보』『반도의 목탁』『자유민보』『국민신보』등이다.
『각성호회보』는 현재 원문은 남아 있지 않지만, 주로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전 민족이 각성하여 궐기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반도의 목탁』은 배재고보와 중앙학교 학생들에 의해 제작되었다. 이들은 신문을 통하여 역시 독립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한편, 만세시위의 비폭력 원칙을 준수할 것을 호소하였다.
『자유민보』는 중앙학교ㆍ경신학교 학생들이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발간한 것이다. 이 신문은 주로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조선은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취지의 논설과 기사를 실었다. 『자유민보』는 파리강화회의에서의 한인 대표단의 활동, 필리핀의 독립운동, 만세운동에 대한 일제의 폭력적인 탄압, 매일신보의 허위보도, 지방 시위 소식 등의 다양한 기사를 담고 있다. 이 신문은 또 사설을 통하여 매일신보의 논설과 거짓 기사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국민신보』는 13도 대표들이 4월 23일 경성에서 모여 임시정부를 선포하였다고 하여, ‘한성정부’의 수립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3ㆍ1운동기에 발간, 배포된 각종 지하신문들은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전달해줄 언론이 없는 상황에서 ‘대안언론’의 역할을 했다. 이들은 기사를 통해 3ㆍ1운동 주체세력의 주장을 선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국내외에서 진행되던 독립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소식, 일제의 잔혹한 탄압 등을 전하였다. 또 사설을 통해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전파하였고, 『매일신보』의 허위기사를 폭로하기도 하였다. 결국 3.1운동기 지하신문은 3.1운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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