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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다산 사후 2세기가 다 되어가는 현 시점에서 그의 사상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의 중심에는 다산이 진정한 의미에서 천주교도였는가의 여부를 밝히는 데에 그 중점이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 학계의 일반적인 정설에 의하면 다산이 젊은 시절 한때 서교에 심취한 것은 사실이지만 조상의 신주를 불사른 윤지충 사건 이후로는 배교한 뒤 유교적인 삶으로 생을 마감하였으며 그 객관적 증거로서는 자찬묘지명이나『여유당전서』속의 기록들이 이를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최석우 신부를 중심으로 한 천주교의 입장은 천주교 신자들이 탄압받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침묵의 논증이라는 역사 이론을 통해 다산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의 유지를 위해 끝까지 침묵을 지켰고 그의 세례명은 요한이었으며『조선복음전래사』의 천주교 저술이나 종부성사를 통해 운명한 점을 토대로 다산은 확실한 천주교도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서로 양분된 채 자신들의 입론을 강화하기 위해 첨예하게 대립되어 왔을 뿐 모든 이가 수긍할 수 있는 만큼 뚜렷한 결론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드러난 문헌속의 자료들을 토대로 다산이 유교적 삶을 살았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릴 뿐, 다산이 천주교도였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보여진다.
이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핵심은 다산의 마음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그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이 문제를 규명하려는 구체적인 시도는 분명 한계를 갖는다.
그동안 다산사상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은 그의 신앙에 대한 경력을 중심으로 학문적 업적을 평가하려는 방향으로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다산 사상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종교적인 삶과 학문적인 삶을 분리시켜 접근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제기하고자 한다. 한 개인의 삶에 있어서 종교적인 경험과 학문적인 영역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산학’으로 일컬어지는『여유당전서』를 중심으로 한 그의 문집 속에서 다산 실학사상의 본질과 그 시대의 사회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그의 실천적인 개혁의지를 제대로 간파하는 것이야말로 다산의 천주교도여부와 같은 풀리지 않는 논쟁 속에 주목하는 것 보다는 오늘날 다산사상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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