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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경상대학교)
저널정보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율곡학연구 율곡학연구 제19권
발행연도
수록면
81 - 114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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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남명(1501-1572)과 율곡(1536-1584)은 조선 중기에 각각 하나의 학파를 창시한 인물이다. 그들의 학문이 갖는 독특한 성격이 학파의 독창성을 형성하였다. 본고에서는 그들 학문의 독특성에 불교와 도가의 사상이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점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들은 각각 살아서부터 학문에 이단적 성향이 있다는 비판을 받았고, 사후에는 문묘종사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다시 이러한 점이 심각한 문제로 거론되었다. 남명은 결국 문묘에 종사되지 못하였고, 율곡은 종사와 출척이 반복되었다. 남명의 사상에는 장자(莊子)적 요소가 산재해 있는데, 이것은 그가 처사로 일생을 살면서 장자의 호방한 자유인의 기상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그는 승려들과 상당한 교유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어려운 삶을 동정하기도 하였으나, 불교에 대한 깊이 있는 학문적 탐구는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율곡은 『도덕경』의 주석서인 『醇言』을 저술하여 노자의 사상을 유학으로 해석하였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그의 성리설에 도가의 사상이 개입되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율곡은 1년 정도 승려와 같은 생활을 하였고 불교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비록 불교를 비판적으로 말하고 있는 사례들도 있으나, 그의 사상 형성에 불교가 미친 긍정적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남명은 장자의 사상을 수용하여 독특한 삶과 사상을 이루었고, 율곡은 도가와 불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성리학에 접목하여 그의 독창적인 이기론을 정립하였다. 남명과 율곡은 모두 불교와 도가를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사상에 수용하였다. 그들은 한국 성리학의 역사에서 ‘삼교회통’ 또는 ‘삼교융회’의 관점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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