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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조선은 왕조 건국의 이념을 성리학으로 내세우면서 건국 초부터 억불시책을 단행하였다. 이후 16세기 중반 중종대까지 계속된 배불의 결과 사찰의 경제적 기반은 사라지고, 승려는 절을 떠나갔다. 이러한 배불의 정치적 측면과 맞물려 경제적 상황 역시 매우 어려운 입장이었다. 특히 불교계는 신분적 천시를 받으면서 제반 잡역에 동원되어 온갖 수탈을 감당해야만 하였다. 잡역 중에서 가장 피해가 컸던 것은 紙役이었다. 사찰은 또한 지방관리나 유력자들에 의해 사사로운 징발과 수탈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조선후기의 불교계는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경제적 배경에서 사찰계가 성립하였다.사찰계란 불교신앙을 바탕으로 수행과 신앙심을 증진시키거나 사찰 재산, 전각, 혹은 의식용품 등을 마련하기 위해 결성한 모든 조직체를 총칭한다. 그러므로 사찰계는 추구하는 목적이 불교신앙으로 귀결됨으로써 단순한 이익집단으로서의 의미보다는 공동체적 요소, 다시 말하면 신앙공동체적 목적을 전제로 성립된다. 현재 사찰에 남아 있는 사적기, 중수기 등의 문헌과 현판문, 그리고 비문 등을 조사한 결과, 조선후기의 사찰계 자료는 264건에 달한다. 구체적으로는 16세기 중엽의 갑계에서 시작하여 1910년까지 결성된 다양한 사찰계들이다.이 가운데 가장 결성빈도가 높은 것은 갑계와 염불계였다. 갑계는 18세기 이후 전국에 확산되면서 사찰의 재정적 기반을 전담할 정도로 역할이 중시되었다. 또한 염불계는 승속을 망라한 대중적 신앙조직으로서 조선후기 염불신앙을 선도해 나갔다. 사찰계는 기본적으로 다수의 승속이 참여하여 이루어지므로 승도가 적은 사찰이라 하더라도 신도가 함께 참여하여 재원을 마련하고 불사를 일으킬 수 있었다.이 글은 사찰계를 통해 조선후기 불사의 구체적 양상을 이해하고 그 위상을 이해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사례를 불사의 성격에 따라 ① 전답과 금전의 시주 ② 전각의 중수 ③ 불상과 불화?종이의 시주 ④ 경전의 간행 ⑤ 노동 불사 ⑥ 교육 불사 ⑦ 신도회 활동 등 7개의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이를 통해 사찰계가 어떻게 불사를 지원하고, 어떠한 활동으로 사찰을 유지시켜 갔는가를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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