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소속 기관 / 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영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교육과정평가연구 교육과정평가연구 제14권 제2호
발행연도
수록면
31 - 56 (2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이 논문의 연구방법이 궁금하신가요?
🏆
연구결과
이 논문의 연구결과가 궁금하신가요?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본 논고는 앞으로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중·고등학교에서의 독도 교육의 방향을 마련하기 위해서 집필되었다. 이러한 목적 아래 수행된 연구 결과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신라 때에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함으로써 독도가 한국의 영토가 되었다고 주장하기보다는, 독도가 울릉도에서 가시거리 내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산국 사람들의 생활공간이었고, 또 우산국의 영역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설득력을 가진다는 지적을 하였다. 둘째 한국의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안용복이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사실을 확약 받고 돌아온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이것을 사실로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에 남아 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하여 그가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당시 ‘우산도’라고 부르던 독도에 ‘자산도(子山島)’란 이름을 붙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후에 자산도라는 이름을 붙인 지도가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아, 독도에 대한 영토의식이 존재했었다는 상정을 하였다. 또 "숙종실록" 보궐 정오편 숙종 40년(1714년) 7월 신유(辛酉: 22일) 조의 기록, 곧 “울릉도의 동쪽에 섬들이 서로 마주 보이는데, (이것이) 왜의 경계에 접해 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독도가 명백하게 조선의 영토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교과서에 기술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였다. 셋째 1900년 10월 27일 대한제국 정부가 칙령 제41호로, 울릉도에 울도군을 설치하고 이 군에서 울릉 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한다는 것을 공포했다. 여기에서 석도라고 하는 것이 독도라는 근거로, 당시에 고종이 송도와 죽도, 우산도 이 세 섬이 울릉도를 통칭한다고 했다는 것과 실제로 이미 그 이전에 이들 세 섬이 그려진 "동여지도"가 존재했었다는 것을 밝혔다. 그러면서 서종학의 연구를 수용하여, 독도(獨島)는 음차자(音借字)이고 석도(石島)는 훈차자(訓借字)이며, 이러한 이두식 표기는 조선 후기까지 사용되었던 첩정(牒呈)의 한 형태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추정은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실이라는 것을 해명하였다. 본고에서는 이렇게 명확한 증거가 남아 있는 세 가지 사실들을 중심으로 한 내용을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기술한다면,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사람들에게도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상세정보 수정요청해당 페이지 내 제목·저자·목차·페이지
정보가 잘못된 경우 알려주세요!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신청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