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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부산대학교)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동양한문학회 동양한문학연구 동양한문학연구 제33권 제33호
발행연도
수록면
301 - 324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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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후기 예술사에 일어난 변화를 전제하면서, 외부의 충격에 의한 근대의 시작,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한국의 근대적 서화계의 형성과 그 성격을 고찰한 것이다.한국의 근대 서화계는 갑오개혁 이후 서화가들의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활동으로 형성된다. 서화가들은 자신들만의 조직을 만들고, 자발적으로 서화를 생산하며, 판매하고, 유통하는, 서화와 관련된 메커니즘 전체를 관장하였던 것이니, 이것을 우리는 서화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근대적 서화계는 과거 官과 사대부 사회를 존립 근거로 삼았던 전근대의 서화계와는 그 성격이 사뭇 다른 것이다.근대적 서화계는 출현했지만, 서화가들이 당면한 문제는 간단치 않았다. 근대에 있어서 ‘서화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들은 당시 유행했던 문명담론을 서화와 연결시켰다. 곧 서화로 문명을 이루는 것은 물론 국가의 발전도 이룩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했던 것이다. 하지만 변영로의 날카로운 질문, 곧 서화에서 문명적인 것, 민족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당시의 서화계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이 궁했던 것은, 급속한 식민지적 근대화에도 원인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서화계의 출발은 처음부터 일제와 친일관료들이 깊숙이 개입하였다. 서화가들은 또 자신들의 존립을 위해 일제와 친일관료를 거부하기보다는 그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요구하였다. 이런 선상에서 1922년 5월 조선총독부가 조선미술전람회를 설립하자 서화계는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고, 당시 제기되었던 한국 서화의 문명화와 민족적 성격에 대해 모색할 여유가 없었다.이것은 한편으로는 서화가들이 전근대에 가졌던, 사대부 체제에 의존했던 기생성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서화가 대부분은 일제나 친일관료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결여되어 있었다. 당시 한국 서화가들의 모든 활동에는 대부분 일제와 친일관료가 관여하였는데, 이는 일제와 친일계의 권력과 자금력, 서화 구매능력을 높이 평가한 서화가들이 그들에게 쉽게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서화가들은 서화와 서화가의 존재와 자립, 서화의 근대화, 이를 위한 문명에 몰두했지만, 그 문명의 주체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다.서화가들의 문명의 주체에 대한 심각한 고민의 결여와 자립과 생존을 위한 안이한 타협으로 한국 근대 서화계는 총독부가 주최한 조선미술전람회가 개최되자 심각하게 붕괴되었으며, 식민화되어갔다. 그 결과 이른바 한국화에 일본적 색채와 스타일이 스며들게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한국화라는 이름보다는 동양화로 불리고, 동양화라고 하면 梅蘭菊竹의 문인화와 산수화를 떠올리는 등 전근대적 요소를 그대로 가지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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