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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군산대학교)
저널정보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백제문화 제39호
발행연도
수록면
5 - 32 (28page)
DOI
10.35300/bjclab..39.2008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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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섬진강 유역에서는 마한세력과 관련된 재지계 토기류만 부장되고, 봉분의 직경이 10m 내외되는 40여 기의 말무덤만 조사되었다. 이를 근거로 영산강 유역의 마한세력이 호남정맥을 넘어 섬진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東進, 대가야를 비롯한 가야세력이 백두대간을 넘어 섬진강 유역을 나아가는 西進을 차단하여 이곳을 緩衝地帶로 설정함으로써, 영산강 유역의 마한세력과 가야세력이 연대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백제의 정치적인 목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백제의 수도에서 남해안 연안항로의 기항지이자 국제 교역항인 고흥반도까지 최단거리로 연결되는 간선 교통로를 확보함으로써, 당시 교역체계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경제적인 의미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하여 마한의 말무덤이 자취를 감춘 이후 섬진강 유역에서는 어떤 유형의 수장층 분묘유적도 조영되지 않았다. 이를 근거로 섬진강 유역에 거미줄처럼 잘 갖추어진 내륙 교통로는 백제의 정치적인 불안기를 제외하면 백제에 의해 줄곧 관할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다가 웅진으로 수도를 옮긴 이후 백제의 수도인 웅진을 중심으로 내륙 교통로가 재편성될 때, 진안 와정토성을 경유하던 한성기의 간선 교통로가 완주 상운리와 전주를 거쳐 호남정맥의 슬치를 넘어 섬진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방법으로 바뀐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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