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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6세기 관료 · 문인들에게 김시습이란 인물이 어떻게 인식되었으며, 그 인식에는 어떤 이유와 배경이 있는지를 고찰한 것이다. 16세기 관료 · 문인들에게 김시습은 다양한 이미지로 존재했다.
중종(中宗) 초기의 정국에서 김시습은 성종(成宗) 대 문운(文運)의 융성함을 보여주는 문사(文士)로 여겨졌는데, 이는 이세인(李世仁)의 발언과 『속동문선』에 수록된 김시습의 작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인해 겨우 목숨을 건지고 은거한 이자(李?)에게는 세상에서 버림받고 망각될 처지에 있는 인재로 여겨졌다.
한편, 개인적인 저작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저작에서도 그를 뛰어난 시승(詩僧)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상당히 넓게 존재했으며, 윤춘년(尹春年)과 이이(李珥)를 통해서는 마침내 백이(伯夷)와 같은 성인(聖人)으로 추숭되었다. 김시습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변화 과정에는 당시의 정치사회적 배경이 밀접하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특히 이이가 「김시습전」에서 김시습을 백이에 견준 것은 후대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는바, 17세기 이후 조선에서는 김시습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보편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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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金時習)
#속동문선(續東文選)
#The Sequel to Dongmunseon(續東文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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