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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15세기를 전후한 시기,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中原에서는 원-명으로의 교체가 이루어졌고, 東夷의 변방에서는 고려를 무너뜨린 조선이 새롭게 건국되었다. 이민족인 몽골이 세운 원나라가 漢族 정통왕조인 명나라로 교체된 사실이 웅변하듯, 중화문명의 질서가 완전히 뒤바뀐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조선에서는 원나라와 혈맹 관계에 있던 고려왕조의 유산을 극복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명나라와 같은 유교문명 국가로서의 전면적인 개혁을 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 말의 최고 지성으로 꼽히던 이색과 조선의 문명을 이끌어간 주역인 신숙주 · 서거정의 인식에는 유사한 지점이 발견된다. 이른바 東國文明에 대한 자부가 그것이다. 본고는 그런 면모를 논의의 단서로 삼아 여말선초라는 역사적 전환기에 공존하고 있던 단절과 지속의 양상을 살펴보고자 했다. 그를 위해 원-명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지속 · 강화되고 있던 華夷秩序의 체계와 그 아래에서 독자적인 문명건설의 근거가 되었던 聲敎自由가 어떤 길항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했다. 그를 위해 창업의 주역인 정도전과 다르게 수성의 주역으로 자처한 변계량이 도모했던 견제와 조절의 과정을 단군과 기자에 대한 인식의 차이, 그리고祭天의 시행 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통해 살펴보았다.
그처럼 조선 건국 초기의 예악문물제도를 관장하고 있던 변계량은 세종의 시대를 맞이하여 곤혹스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명나라 永樂帝 이후 한층 강화된 화이질서의 체계 아래에서 中華文明의 수용과 동국문명의 건설이라는 모순적인 과제를 동시적으로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종은 중화문명으로의 편입을 위해 매진한 결과, 훈민정음과 같은 동국문명의 절정에 도달하는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중화문명과의 동화 노력이 역설적으로 동국문명을 완성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화이질서 체계에 기반하고 있는 중화문명과 동국문명이라는 이율배반적인 관계는 문명국을 자처한 조선이 다시금 그 주변국을 차별하는 기제로 작동하기도 했다. 문명에 중심과 주변을 상정하는 순간, 그런 차별적 위계질서는 운명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조선의 문명을 완성했다고 일컬어지는 성종의 시대를 정점으로 하여, 조선은 또 다른 문명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마도 선배세대가 추구했던 文章을 통한 문명국가와 달리 道學을 통한 문명국가라 명명될 수 있을 법하다. 그 점을 밝히는 것은 본고에서 제기했던 논점을 이어받아 탐구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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