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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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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118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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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 147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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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沈維賢(1697~1728)은 경종비 端懿王后의 동생으로, 靑恩府院君 沈浩家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심호가는 정치적으로 少論에 속하였고, 왕실 외척으로서 차지하는 위상이 컸다. 이러한 당색과 가문의 위상은 심유현의 혼맥에도 반영되었다. 숙종대 蔭敍로 정계에 진출한 심유현은, 경종·영조 연간 소론 강경파인 急少로 활동하였다. 그는 연소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戚臣으로서 빠르게 부상하였다. 경종이 즉위 4년 만에 승하하자, 심유현은 국장 의례에 실무자로 참여했다. 이는 당시 왕실에서 심유현이 경종의 가까운 戚里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1728년(영조 4) 3월 영조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戊申亂이 일어났다. 심유현은 외척의 신분으로 무신란에 가담했는데, 그 혐의는 경종의 죽음에 관한 凶言을 만들어 전파한 것과 담양부사로 재직 시에 담양부의 화약을 반출한 것이었다. 그중 영조는 ‘흉언’에 주목하여 무신란 逆魁 10인에 심유현을 포함시켰다. 심유현의 흉언은 영조의 정통성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치적 파급력이 컸다. 이처럼 심유현이 무신란의 주역이 된 배경에는 외척으로서의 사회적 위상 약화와 정치적 입지 축소, 그리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 처우에 대한 불만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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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국문 초록
  2. Ⅰ. 머리말
  3. Ⅱ. 심유현의 배경과 정치적 동향
  4. Ⅲ. 무신란 가담과 혐의의 실상
  5. Ⅳ. 맺음말
  6. 참고문헌
  7. Abstract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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