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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최남선의 백팔번뇌(1926), 이은상의 노산시조집(1932), 이병기의 가람시조집(1939)과 그들의 학문적 이론을 바탕으로 근대시조의 특성을 고찰하였다.
이 시조집에는 육당·가람·노산의 魂心이 담겨 있다. 이들에 의해 창작된 시조는 예전 사람들이 즉흥적으로 부르며 향유되던 시조가 기록 문학으로 전환되면서, 읽는 방식으로 생성되었다.
고시조와 현대시조를 잇는 가교역할을 담당했던 이들에 의해 수립된 근대시조론을 다양한 시각에서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고시조와는 다른 근대시조라는 명칭이 붙여지게 되었다. 근대시조라는 말은 첫째, 고시조와의 변별적 자질을 갖춘 시조라는 점이다. 고시조는 일단 창이 전제된 시가였다. 가곡창과 시조창으로 불려지던 고시조와는 달리 근대시조는 신문·잡지 등의 인쇄 문화를 통해 可讀性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근대시조는 창사역할을 포기했다기보다 창이 전제되지 않은 창작이었다는 점이 고시조와 다른 점이다. 다시 말해 창을 대신해 율독을 고려한 창작이었다는 점이다.
이에 따른 초창기의 연구는 율격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도 이해되지 못한 상태에서 시조의 율격을 음보율이나 의미단위가 아닌 음수율로 보았기 때문에 1차적으로 자수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고시조에 산재해 있는 형식적 자율성을 배제하고 시조의 존재 근거에 정당성을 확보시키는 의미에서 시조의 정형성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 점은 육당 (3장 6구 45내외)과 노산 시조의 한계로 지적할 수 있겠다. 노산의 낭독구조로서의 표준형 이론은 상당히 신축성 있게 이루어져 있었으나 실제 작품에서는 육당 이론을 따랐던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음수율의 신축성으로 기본형태를 깨뜨리지 않는 범주에서 3장 12구를 주장하였다. 표준으로서의 시조형을 만들자는 의도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가람은 3장8구체를 주장하는 등, 현대시조시형을 창안 발표하였다. 6구설이나 12구설이 주로 시조의 율격을 중심으로 주장되는 이론이라고 하면 8구설은 종장에 전환과 결말을 갖는 의미 중심의 이론으로 보여지는 점이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음악과 결부된 시조에서 벗어났다는 점과 3장을 고수했다는 점, 그리고 종장 초구3자 주장과 연작시조 창작에 관심이라 할 것이다.
둘째, 표기상의 차이다. 고시조집은 필사본으로 전수되어왔지만 근대시조는 활자본이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전자는 시각적 효과를 무시한 표기 형태였다면 후자는 시각적 효과를 고려한 표기였다는 점에서도 근대 시조의 특징이 나타난다.
시조의 한 章은 음보와 句의 構造로 나타난다. 음보는 자연스러운 음성언어의 보폭으로 그 율격을 이루고, 句는 음보가 모여 형성된 공간으로서 휴지를 안고 율격을 형성한다. 이 때 장과 장 사이의 연결구조가 시조의 정형성을 擔保로 한다. 그래서인지 육당·가람·노산 시조에서는 章의 離脫이 나타나지 않는다. 章은 4음보의 결합체이다. 2음보가 대응의 연첩으로서 4음보 1행으로 되어 의미의 단위가 된다. 그러므로 음보율을 우선시 한 표기였다. 이는 율독을 위한 표기라고 하겠다.
셋째, 작가층의 차이다. 고시조의 작가는 서구문화를 접하지 않은 작가층이었다면 근대시조의 작가는 서구문화를 접한 작가층이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 근대사회에 대한 이해와 식견을 갖춘 식자층이라 할 수 있다.
고시조 창작자도 지식층이었던 점은 유사하나, 고시조의 창작을 주도했던 사대부들은 유교사상을 기반으로 임금을 ‘님’으로 표상하며 ‘충’을 투영했다면, 근대시조에 와서는 ‘조국애’로 치환되어 형상화되었다. 또한 고시조의 주제들이 개인적이고 서정적인 것을 형상화하고, 관념적 주제가 담겨있다면 근대시조는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일상성을 실정실감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하겠다. 그런 면에서 가람은, 생활 시조를 개척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세 시조집은 고시조의 구태를 벗어나 신창작을 위하여 시조의 ‘형식’을 討究하여 모범된 전형을 보였고, 현대시조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현대시조의 방향성을 제시한 시조작품들은 당시 같이 논의되었던 자유시와 맥을 같이 하며, 현대가곡의 작곡가에 의해 가곡화 되기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특히 가람과 노산의 시조가 현대가곡화 되었으며, 노산의 작품은 다른 작가들보다 월등히 많다.
이들의 작품이 가곡화 될 수 있었던 것은 시조 형식의 현대화에 현대적 어법과 내용이 전통 율격구조와 융합하여 현대가곡으로 부르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시조가 세계화와 온전한 미래를 지향한 현대문학으로 유통을 위한 진화가 요구되는 시점에서 거론되고 있는, 시조의 본질론과 정형성에 대한 논의에 방향 모색은 근대시조론을 근간으로 하였다. 그 이유는 현대시조의 개척기 시인들은 시조를 올곧게 쓰려고 하였고 그 방면에 나름대로 체계를 가졌던 시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시대 시조의 이론으로 현대성과 시조성의 방향을 정리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근대시조에 담긴 서정적인 내용, 형식에 내재된 정형화된 율조는 반복적 리듬을 생성하여 가곡화되기 용이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에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서정성을 담아낸다면 현대시조가 지닌 고유한 정형성과 맞물려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시조집에는 육당·가람·노산의 魂心이 담겨 있다. 이들에 의해 창작된 시조는 예전 사람들이 즉흥적으로 부르며 향유되던 시조가 기록 문학으로 전환되면서, 읽는 방식으로 생성되었다.
고시조와 현대시조를 잇는 가교역할을 담당했던 이들에 의해 수립된 근대시조론을 다양한 시각에서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고시조와는 다른 근대시조라는 명칭이 붙여지게 되었다. 근대시조라는 말은 첫째, 고시조와의 변별적 자질을 갖춘 시조라는 점이다. 고시조는 일단 창이 전제된 시가였다. 가곡창과 시조창으로 불려지던 고시조와는 달리 근대시조는 신문·잡지 등의 인쇄 문화를 통해 可讀性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근대시조는 창사역할을 포기했다기보다 창이 전제되지 않은 창작이었다는 점이 고시조와 다른 점이다. 다시 말해 창을 대신해 율독을 고려한 창작이었다는 점이다.
이에 따른 초창기의 연구는 율격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도 이해되지 못한 상태에서 시조의 율격을 음보율이나 의미단위가 아닌 음수율로 보았기 때문에 1차적으로 자수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고시조에 산재해 있는 형식적 자율성을 배제하고 시조의 존재 근거에 정당성을 확보시키는 의미에서 시조의 정형성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 점은 육당 (3장 6구 45내외)과 노산 시조의 한계로 지적할 수 있겠다. 노산의 낭독구조로서의 표준형 이론은 상당히 신축성 있게 이루어져 있었으나 실제 작품에서는 육당 이론을 따랐던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음수율의 신축성으로 기본형태를 깨뜨리지 않는 범주에서 3장 12구를 주장하였다. 표준으로서의 시조형을 만들자는 의도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가람은 3장8구체를 주장하는 등, 현대시조시형을 창안 발표하였다. 6구설이나 12구설이 주로 시조의 율격을 중심으로 주장되는 이론이라고 하면 8구설은 종장에 전환과 결말을 갖는 의미 중심의 이론으로 보여지는 점이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음악과 결부된 시조에서 벗어났다는 점과 3장을 고수했다는 점, 그리고 종장 초구3자 주장과 연작시조 창작에 관심이라 할 것이다.
둘째, 표기상의 차이다. 고시조집은 필사본으로 전수되어왔지만 근대시조는 활자본이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전자는 시각적 효과를 무시한 표기 형태였다면 후자는 시각적 효과를 고려한 표기였다는 점에서도 근대 시조의 특징이 나타난다.
시조의 한 章은 음보와 句의 構造로 나타난다. 음보는 자연스러운 음성언어의 보폭으로 그 율격을 이루고, 句는 음보가 모여 형성된 공간으로서 휴지를 안고 율격을 형성한다. 이 때 장과 장 사이의 연결구조가 시조의 정형성을 擔保로 한다. 그래서인지 육당·가람·노산 시조에서는 章의 離脫이 나타나지 않는다. 章은 4음보의 결합체이다. 2음보가 대응의 연첩으로서 4음보 1행으로 되어 의미의 단위가 된다. 그러므로 음보율을 우선시 한 표기였다. 이는 율독을 위한 표기라고 하겠다.
셋째, 작가층의 차이다. 고시조의 작가는 서구문화를 접하지 않은 작가층이었다면 근대시조의 작가는 서구문화를 접한 작가층이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 근대사회에 대한 이해와 식견을 갖춘 식자층이라 할 수 있다.
고시조 창작자도 지식층이었던 점은 유사하나, 고시조의 창작을 주도했던 사대부들은 유교사상을 기반으로 임금을 ‘님’으로 표상하며 ‘충’을 투영했다면, 근대시조에 와서는 ‘조국애’로 치환되어 형상화되었다. 또한 고시조의 주제들이 개인적이고 서정적인 것을 형상화하고, 관념적 주제가 담겨있다면 근대시조는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일상성을 실정실감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하겠다. 그런 면에서 가람은, 생활 시조를 개척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세 시조집은 고시조의 구태를 벗어나 신창작을 위하여 시조의 ‘형식’을 討究하여 모범된 전형을 보였고, 현대시조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현대시조의 방향성을 제시한 시조작품들은 당시 같이 논의되었던 자유시와 맥을 같이 하며, 현대가곡의 작곡가에 의해 가곡화 되기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특히 가람과 노산의 시조가 현대가곡화 되었으며, 노산의 작품은 다른 작가들보다 월등히 많다.
이들의 작품이 가곡화 될 수 있었던 것은 시조 형식의 현대화에 현대적 어법과 내용이 전통 율격구조와 융합하여 현대가곡으로 부르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시조가 세계화와 온전한 미래를 지향한 현대문학으로 유통을 위한 진화가 요구되는 시점에서 거론되고 있는, 시조의 본질론과 정형성에 대한 논의에 방향 모색은 근대시조론을 근간으로 하였다. 그 이유는 현대시조의 개척기 시인들은 시조를 올곧게 쓰려고 하였고 그 방면에 나름대로 체계를 가졌던 시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시대 시조의 이론으로 현대성과 시조성의 방향을 정리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근대시조에 담긴 서정적인 내용, 형식에 내재된 정형화된 율조는 반복적 리듬을 생성하여 가곡화되기 용이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에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서정성을 담아낸다면 현대시조가 지닌 고유한 정형성과 맞물려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목차
- Ⅰ. 序論 11. 硏究目的 12. 硏究史 檢討 33. 硏究方法 및 範圍 6Ⅱ. 時調形式의 摸索 91. 音數律의 固着 101) 音節數의 正確性 122) 律性의 새로운 時角 402. 文章構造로서의 形式 431) 章의 槪念 432) 句의 槪念 473) 兩章時調의 出現 51Ⅲ. 時調의 主題 樣相 541. 祖國 讚歌의 意味 542. 自然 禮讚 663. 生活相의 告白 70Ⅳ. 時調의 새로운 傳統 樹立 741. 連作時調의 開拓 742. 歌曲 歌詞로서의 時調 813. 詩로서의 時調 87Ⅴ. 結論 96參考文獻 99국문초록 117ABSTRACT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