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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고려대학교, 高麗大學校 大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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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본고는 蓮潭 金明國 회화의 회화사적 의의를 밝히고, 조선시대 김명국에 대한 인식을 통시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그를 역사적으로 자리매김 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김명국은 한국회화사 연구에서 조선 절파화의 정점을 이룬 화가로 평가되어 왔으며, 조선 중기 회화에서는 보기 드문 도석인물화 제작에도 크게 성취한 바가 있었음이 인정되어 왔다. 또한 여러 일화가 전하기에 대중적으로도 폭넓은 관심을 받는 작가이기도 하다.
    김명국의 정확한 가계는 알기 어렵고, 그림을 배운 과정도 알 수 없다. 다만 기록을 통해 1623년부터 1663년까지의 활동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화원으로서 의궤제작에 빈번히 동원되었는데, 이를 통해 화원으로서 공적 업무에 능숙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일본측 기록을 통해 김명국이 도화서교수를 역임했음을 알 수 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몇 가지 기록은 1640년대에는 기량을 인정받아 도화서 敎授를 역임했을 가능성을 알려준다.
    일본통신사 수행화원으로서 두 차례 도일한 이력은 중요하다. 일본에서 김명국의 인기는 상당했다. 양국간 교류에서 회화는 중요한 매개가 되었고, 이 과정에서 카노화가와의 만남이 이루어졌음이 확인되는데, 이는 김명국 회화세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고 보인다.
    조선 중기 산수화단은 安堅派 畵風이 지속적으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김명국의 유일한 기년작인 1662년작 《四時八景圖帖》은 만년작으로서, 전형적인 안견파 화풍을 근간을 하여 자신만의 화풍을 성립시킨 특징을 보여준다. 김명국의 화원화가로서의 입장을 고려하면, 그가 학습적 태도를 견지하였음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조선 중기 팽배한 은일정신과 함께 唐宋 시문이나 유명한 故事를 바탕으로 한 고사인물도를 다수 제작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인물의 감정을 서사적으로 표현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이는 생동감 넘치는 한국적 인물묘사와 맥을 이은 것으로서, 李澄이 수구적인 산수화풍을 계승하는데 주력한 것과는 다른 노선을 걸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 회화로서는 보기 드문 도석인물화는 일본통신사 수행화원으로서 渡日했을 당시 제작된 수응화에서 출발한 것이다. 하지만 조선 화풍을 접목되어 일본 화풍과는 차별적인 도석인물화를 제작했다. 일본에서 접한 발묵, 파묵, 감필 등의 화법은 다른 도석인물화에 활용되기도 했다.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한 김명국 화풍은 생존기간에는 혹평 받았다. 하지만 18세기에 경화지역 문인, 특히 南人·小北系 인물들에 의해 ‘奇’, ‘變’, ‘化’의 가치가 인정되며 최고의 화가로 부상하게 된다. 그것은 性理學을 넘어서, 佛敎와 道敎, 陽明學 등을 절충하려했던 남인·소북파의 학문경향과, 明淸代의 문예수용과 함께 ‘天機’와 ‘奇’가 숭상된 심미관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김명국 회화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은 김명국 傳記 저술로 이어졌다. 이 속에는 비범한 재능, 술, 기행 등, 역대 저명한 예술가들이 갖고 있었던 보편적인 요소가 담겨있다. 또한 唐代 逸品畵家로 꼽히는 인물들에 대한 저술과 서술구조가 일치한다. 따라서 김명국 전기는 모두 널리 알려진 예술가 일화가 각색되어 김명국에게 착색된 것이며, 특수한 김명국像은 후대에 가공된 이미지였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18세기에 가공된 이미지는 19세기에 그대로 모방·계승되면서 고착화됐고, 20세기 초에는 낭만적 이미지를 공통적으로 갖춘 작가군과 계통이 열거되는데, 이때 김명국이 종조로서 자리하게 되었다.
    18세기식 김명국관 고착 및 전승은 도화서 화원으로서의 김명국 정체성을 희석시키고, ‘奇人’의 이미지만 남겼으며, ‘김명국=신선도’라는 대응공식을 만들었다. 이는 假作의 생산과 관계된다. 김명국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수많은 작품이 주로 신선도인 것은 18세기부터 생성된 기인화 된 김명국 이미지의 영향력을 현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조선 중기 화가 중 후대까지 이렇게 밀도 있게 논의된 작가는 없었다. 또 한국회화사에서 생존시기와 사후의 평가가 이같은 반전을 보이는 작가도 없었다. 김명국의 의미가 남다른 것은 그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조선시대 사상과 문예를 주도했던 담론의 추이와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김명국 하나로 조선시대 문예 분위기를 통시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사적 의미는 특별하다.

    목차

    1. 국문초록 ⅰ
      Ⅰ. 머리말 1
      Ⅱ. 생애 및 활동 4
      1. 출신 및 활동연대 4
      2. 화원으로서 繪事 8
      3. 일본통신사 수행화원 활동 11
      Ⅲ. 조선 중기 화단 경향 계승 18
      1. 安堅派 화풍의 계승 18
      2. 은일사상과 고사인물도의 제작 27
      Ⅳ. 渡日行과 도석인물화 39
      1. 韓·日 회화경향이 결합된 酬應畵 42
      2. 선종화법의 활용 53
      Ⅴ. 김명국 회화에 대한 평가와 가공된 김명국像 62
      1. 當代 김명국에 대한 평가 62
      2. 後代 김명국 화풍의 이해와 그 배경 67
      3. 가공된 김명국像과 假作의 생산 77
      Ⅵ. 김명국의 史的 의의 89
      1. 김명국 화풍의 회화사적 의의 89
      2. 김명국像 형성의 의의 90
      Ⅶ. 맺음말 92
      참고문헌 95
      도판목록 107
      도판 111
      Abstract 133
      부록 1. 傳 김명국 작품 목록 137
      부록 2. 조선시대 김명국 관계 기록 목록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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