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의약학
농수해양학
예술체육학
복합학
개인구독
소속 기관이 없으신 경우, 개인 정기구독을 하시면 저렴하게
논문을 무제한 열람 이용할 수 있어요.
지원사업
학술연구/단체지원/교육 등 연구자 활동을 지속하도록 DBpia가 지원하고 있어요.
커뮤니티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와 전문성을 널리 알리고, 새로운 협력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네트워킹 공간이에요.
이용 39
초록·키워드
백제시대 석불은 재료의 특성상 현재까지 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造成 당시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그러므로 백제시대 석불의 國籍문제가 해결되므로 당시의 불상연구에도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백제시대 석불은 조성되어 있는 위치로 보아 당시의 교통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백제시대 석불 樣式의 지역적인 특성과 문화의 전파경로 등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석불은 서북부 지역에 예산화전리석조사면불상과 태안동문리마애삼존불입상, 서산용현리마애여래삼존상이 조성되어 있고, 중부 지역에는 공주갑사석조보살입상, 석조광배(공주 금학동 출토), 익산연동리석조여래좌상, 태봉사삼존석불, 정읍보화리석조이불입상이 조성되어 있다. 이들 석불이 조성되어 있는 지역은 교통·군사적인 측면에서 주목되는 곳이다.
백제시대의 석불은 일반적인 형식을 벗어난 三尊形式을 취하고 있다. 당시의 석불은 立像과 坐像이 共存하고 있으나 입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臺座는 蓮華座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좌상은 裳懸座를 이루고 있다. 정읍보화리석조이불입상의 향좌석불입상을 제외하고는 목에 삼도가 없고, 두꺼운 通肩의 法衣로 U형 의문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좌?우 대칭이다. 그리나 정읍보화리이불입상은 右肩偏袒이다. 또한 입가장 자리를 살짝 판 고졸한 미소를 띠며, 手印은 서산지역의 석불은 通印으로 불리우는 시무외여원인을 결하였으나 익산과 정읍지역의 석불은 가슴에서 내장하거나 옷자락을 잡은 수인과 왼손은 여원인을 결하고 있다. 머리는 대체로 육계가 표현된 素髮이다. 광배는 주형으로 원형과 보주형의 두광을 갖추고 있다.
백제는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인도에서 직접 律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 특유의 계율이 성립되었을 것이다. 계율주의는 도솔천에 상생을 원하는 미륵상생신앙과 미륵사 창건을 통한 미륵불국토를 나타내고 있다. 나아가 신라 승 진자가 미륵을 친견하기 위하여 백제 수원사를 찾고 있는 것을 볼 때 미륵이 출현하는 인연있는 국토로 현세적인 미륵하생신앙을 강력히 표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은 신앙의 형태는 석불의 조상활동으로 표출되었다고 생각된다.
다음으로 석불의 분포에 있어서는 지리적으로 교통로상에 위치하고 있어 주목을 끌게 한다. 백제는 한강으로의 진출로가 막힌 이후 주요 통로였던 서산 ? 태안지역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으나 해양을 통한 외래문화의 수용에는 다양한 루트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백제시대 석불의 조성은 당시 교통로상에서도 정치적 ·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조성되어 있어 호국이념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러한 면에서 백제시대 조상된 석불은 교통로상에 위치하며 당시 유행한 미륵신앙과 조화를 이루며 현세적인 구복신앙은 물론 나아가 호국적인 불국토를 이루고자 했던 백제인의 염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한다.
백제시대 석불은 조성되어 있는 위치로 보아 당시의 교통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백제시대 석불 樣式의 지역적인 특성과 문화의 전파경로 등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석불은 서북부 지역에 예산화전리석조사면불상과 태안동문리마애삼존불입상, 서산용현리마애여래삼존상이 조성되어 있고, 중부 지역에는 공주갑사석조보살입상, 석조광배(공주 금학동 출토), 익산연동리석조여래좌상, 태봉사삼존석불, 정읍보화리석조이불입상이 조성되어 있다. 이들 석불이 조성되어 있는 지역은 교통·군사적인 측면에서 주목되는 곳이다.
백제시대의 석불은 일반적인 형식을 벗어난 三尊形式을 취하고 있다. 당시의 석불은 立像과 坐像이 共存하고 있으나 입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臺座는 蓮華座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좌상은 裳懸座를 이루고 있다. 정읍보화리석조이불입상의 향좌석불입상을 제외하고는 목에 삼도가 없고, 두꺼운 通肩의 法衣로 U형 의문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좌?우 대칭이다. 그리나 정읍보화리이불입상은 右肩偏袒이다. 또한 입가장 자리를 살짝 판 고졸한 미소를 띠며, 手印은 서산지역의 석불은 通印으로 불리우는 시무외여원인을 결하였으나 익산과 정읍지역의 석불은 가슴에서 내장하거나 옷자락을 잡은 수인과 왼손은 여원인을 결하고 있다. 머리는 대체로 육계가 표현된 素髮이다. 광배는 주형으로 원형과 보주형의 두광을 갖추고 있다.
백제는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인도에서 직접 律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 특유의 계율이 성립되었을 것이다. 계율주의는 도솔천에 상생을 원하는 미륵상생신앙과 미륵사 창건을 통한 미륵불국토를 나타내고 있다. 나아가 신라 승 진자가 미륵을 친견하기 위하여 백제 수원사를 찾고 있는 것을 볼 때 미륵이 출현하는 인연있는 국토로 현세적인 미륵하생신앙을 강력히 표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은 신앙의 형태는 석불의 조상활동으로 표출되었다고 생각된다.
다음으로 석불의 분포에 있어서는 지리적으로 교통로상에 위치하고 있어 주목을 끌게 한다. 백제는 한강으로의 진출로가 막힌 이후 주요 통로였던 서산 ? 태안지역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으나 해양을 통한 외래문화의 수용에는 다양한 루트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백제시대 석불의 조성은 당시 교통로상에서도 정치적 ·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조성되어 있어 호국이념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러한 면에서 백제시대 조상된 석불은 교통로상에 위치하며 당시 유행한 미륵신앙과 조화를 이루며 현세적인 구복신앙은 물론 나아가 호국적인 불국토를 이루고자 했던 백제인의 염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한다.
목차
- Ⅰ. 머 리 말 1Ⅱ. 石佛 造成의 背景 41. 歷史?地理的 背景 42. 信仰的 背景 8Ⅲ. 石佛의 樣式 15Ⅳ. 石佛 造成의 特徵 41Ⅴ. 맺 는 말 49참고문헌 51영문요약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