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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대학교, 漢城大學校 大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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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고구려 남진 초기인 4세기 말부터 고구려의 멸망시기까지 고구려의 영향력아래 있었던 연천지역의 고구려 유적에 대한 연구이다.
현재 남한 내 고구려 유적은 임진·한탄강유역, 양주분지, 한강유역, 금강유역 등 크게 4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연구되고 있는데 연천은 임진·한탄강유역에 속한다.
연천의 고구려 관방유적은 크게 3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운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3개의 성을 중심으로 주변 보루들이 포진되어 있는 형국이다. 연천의 세 성들은 고구려의 남진시기부터 멸망시기까지 활용되었는데 각 성마다 중요하게 사용된 시기는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은대리성은 장수왕의 한성공취 즈음에 집중 활용 되었고, 당포성은 연천 점유시기 전반적으로 활용되었으나 특히 대 신라시기에 중요하게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호로고루는 목책 등으로 보아 초기에 중요하게 사용되다가 남진이 본격화 되던 시기부터는 연천 뿐 아니라 고구려 남진기지 총 사령부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연천의 고구려 유적은 타 지역과 구별되는 점들이 있다. 고구려는 주변의 자연지형을 십분 활용하여 주로 산성을 쌓아 적을 방어하였다. 그런데 연천지역에는 강안에 평지성(平地城)이 발견된다. 호로고루, 당포성, 은대리성은 도강이 수월한 곳의 강 언덕에 평지성의 형태를 하고 있다.
관방유적 외에 2곳의 고분군이 있는데 연천의 고분군은 타 지역의 고분군과는 달리 밀집도가 높다. 남한 내 고구려고분군들이 한 유적 당 보통 1-2기의 석실분이 발견되는 반면 강내리 고분군의 경우 9기의 석실분이 발견되었으며, 신답리 고분군은 2기의 석실분이 조사되어 있으나 신답리 고분군 주위에 여러 기의 고분이 산재하고 있었던 정황이 있다.
연천의 고구려 유적들에서 발굴되는 유물들도 타 지역에 비해 차이점이 있다. 호로고루와 무등리2 보루에서 발견된 탄화곡물은 이곳에 군량미를 저장하던 시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탄화곡물이 발견 된 곳은 연천지역 뿐이다. 또한 당포성, 호로고루, 무등리1 보루, 두루봉 보루, 아미성 등에서는 고구려 와편이 발견되었는데 현재 남한 내 고구려 와편이 발견된 곳이 8곳 중 5곳이 연천에 있다. 고구려 토기 또한 연천의 유적지 9곳에서 수습되었다. 그 외 호로고루와 강내리 고분군에서는 위계가 높은 유물들이 다수 발굴되었다. 유적의 규모나 수습된 유물이 남한 내 타 지역과 확연한 차이점을 보이는 점들은 연천지역이 안정적으로 고구려의 영역화가 진행되었고, 장기간 고구려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지역임을 말해준다.
고구려는 광개토왕 말기 남진을 시작하는데, 이 시기에 연천은 고구려의 영역에 편입되어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고구려의 영역에 속하였다. 연천에 축조된 고구려 유적들은 고구려가 백제를 주 공격대상으로 남진을 진행하던 시기에 대부분 축성을 하였다. 이 시기 연천의 관방유적들은 고구려남진의 거점 및 보급기지 역할을 하였다. 이 즈음 연천에는 고구려의 고급 관리가 파견된 사령부가 있게 되고, 이곳에 파견된 고급관리(귀족)의 고분이 조성된다. 그 후 6세기 중엽, 나제동맹군의 반격으로 고구려의 남경(南境)이 북상하고 고구려와 신라는 임진·한탄강을 국경으로 삼게 된다. 대 백제시기에 축성한 관방시설들은 대 신라시기에 그대로 활용하는데, 대 신라시기에는 무등리 보루군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고구려가 629년 낭비성전투에 패한 후 임진강을 경계로 신라와 대치하게 되는데 지리적으로 무등리 보루군도 신라 성들과 대치하는 형국이었다.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후 임진강유역은 다시 나당연합군과 고구려 부흥군과의 접전의 장소가 된다. 삼국사기의 호로하전투의 장소가 지금의 임진강 호로고루 인근이다. 그 후 신라가 당군을 몰아내고 삼국통일의 분기점이 되는 매초성전투를 치르는데 ‘매초성’ 또한 임진·한탄강 일대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다.
이처럼 연천지역은 고구려의 남진시기 고구려 남진의 거점기지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고구려의 멸망 시까지 고구려의 영역아래 있었다. 고구려시기 연천은 남한의 타 지역과는 달리 비교적 안정적으로 고구려의 영역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고구려가 비중 있게 경영하던 지역이다. 고구려가 270여 년 간에 걸쳐 연천에 남겨놓은 유적은 연천지역이 고구려사(高句麗史)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지역임을 알게 해 준다.

목차

  1. Ⅰ. 서론 1
    Ⅱ. 연천의 고구려 유적 현황 3
    1. 군사(관방)유적 9
    2. 고분유적 29
    3. 유적의 분포양상과 특징 31
    Ⅲ. 연천 고구려 유적의 성격 37
    1. 고구려와 백제 각축기의 연천(4세기 말~ 6세기 중엽) 39
    2. 고구려 신라 대립기의 연천(6세기 중엽 ~ 7세기 후반) 47
    Ⅳ. 결론 57
    참고문헌 59
    ABSTRACT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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