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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식민지 시대 일본에 의해 조성된 창경원 식물원이 한국 식물원의 효시라는 설명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비롯해, 한국 식물원의 기원과 진화 과정을 밝히는 역사적 고찰은 지금껏 없었다. 이에 본 논문은 창경원 식물원이 조성되기 이전에 발현한 식물원의 맹아를 찾아 서술함으로써 한국 식물원의 태동 과정에 대한 총체적 양상과 그 함의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식물원의 탄생을 추적할 수 있는 키워드로 ‘근대 과학의 탄생’에 주목하고, 한국 식물학의 역사에서 두드러진 변화를 보인 네 가지 시기를 중심으로 식물원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2장에서는 여말선초인 13세기부터 15세기 사이에 본초학과 향약(鄕藥)에 대한 관심 속에서 등장한 약초원을 살펴보았다. 고려 말에는 성리학적 자연관의 영향으로 향약론이 대두하면서 토산 약초를 구해 약포(藥圃)를 가꾸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의료가 국정 운영의 핵심으로 인식되었던 조선 전기에 이르러 향약 정책과 제도 시행이 이루어졌는데, 그 중 하나가 약초의 확보·증식·토산화 등을 위한 종약전(種藥田)이라는 의료 시설이었다. 결국 종약전을 통해 의약학의 발달, 지리에 대한 재인식과 함께 일어난 토산 약초에 대한 관심, 그리고 강력한 왕권의 정책에 의해 15세기경부터 한반도에 왕립 약초원이 운영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3장에서는 조선 후기인 18세기 후반, 박물학적 경향 속 정원 문화의 변화 양상을 검토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사물의 이치를 탐구해 지식을 넓힐 수 있다는 ‘격물치지(格物致知)’가 바람직한 학문 태도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사물에 대한 몰두를 가리키는 ‘벽(癖)’ 예찬론을 낳고, 수집가와 박물학자를 배태하였다. 정원과 원예 문화에서도 박물학적 경향이 나타났는데, 새로운 화훼 풍속으로 기화이초 애호와 수집 열기가 확인되며, 더 나아가 화훼 고증·관찰·명명과 같은 탐구 경향도 엿보인다. 따라서 조선 후기 애호가의 정원은 화훼 수집과 탐구라는 식물원의 몇 가지 역할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4장에서는 개화기인 19세기 후반, 박물학 교육이 제도화되던 시대의 식물원 개념과 그 형성 과정을 밝혔다. 사회 개혁의 일환으로 대두된 개화(開化)사상은 문명국에 이르기 위해 서구 문물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형성했다. 이에 따라 서양을 통해 박물학 교육을 비롯해 각종 근대 문물이 유입되었으며, 식물원의 유입 경로 역시 마찬가지 양상을 보였다. 사절단과 유학생 등 개화기 조선의 지식인들이 해외 유수의 식물원을 견문하는 과정을 통해 식물원의 정의, 특성, 역할 뿐 아니라 필요성을 인식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적인 의미의 식물원 개념이 적어도 19세기 후반 국내에 도입되어 논의되고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5장에서는 20세기 초 식물분류학의 여명기에 설립된 식민지 식물원, 창경원 식물원을 재고하였다. 창경원 식물원은 과학 탐구 기관을 표방했으나 당시 식물학계에서 연구 기관으로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창경원 식물원의 탄생은 오히려 한·일 양국에서 정치적 혹은 문화적으로 계몽된 상태를 가리켰던 취미 담론의 출현과 관련해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창경원 식물원이 식물에 대한 취미를 제공함으로써 대중을 교양 시민(혹은 신민)으로 양성하는 전시와 교육 기관으로 논의되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연구 결과 한국 식물원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 강점기 이전에 식물원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식물 연구와 교육 및 전시 기능은 확인되지 않으나, 의료기구 종약전에서 약초라는 범주에 속한 식물을 ‘수집’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식물 교육 및 전시 기능은 엿보이지 않으나, 애호가의 정원에서 약초라는 범위 이상의 보다 다양한 식물을 ‘수집’한 양상을 비롯해 박물학적 ‘탐구’ 경향이 나타났다. 게다가 식물원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때가 일제 강점기 이전인 개화기이고, 비록 담론에 불과했으나 이때 식물원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더 나아가 필요성이 제기된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 이전에 이미 약초원으로서, 화훼 탐구 정원으로서, 혹은 담론으로서 식물원은 태동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둘째, 식물원은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한 것이 아니다. 종약전, 애호가의 정원, 개화기의 식물원 논의, 그리고 창경원 식물원의 조성 주체와 탄생 맥락은 서로 달랐다. 결국 한국 식물원의 진화 과정은 불연속적이며 산발적인 궤적을 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종약전, 애호가의 정원, 개화기 지식인의 식물원 견문록, 창경원 식물원으로의 한국 식물원의 탄생에 대한 지적 여정을 통해 이들이 오늘날의 식물원에 전하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식물원의 존재의 이유이다. 식물원은 지식을 생산하고 확산시키는 발판이며, 구체제를 혁신하기 위해 모색하거나 도입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산물이고, 안목과 교양을 쌓는 수단이었다. 다시 말해, 한국 식물원의 역사는 식물원이 더 나은 삶을 향한 ‘플랫폼(platform)’이라는 존재임을 증명해보인 궤적이었다.
2장에서는 여말선초인 13세기부터 15세기 사이에 본초학과 향약(鄕藥)에 대한 관심 속에서 등장한 약초원을 살펴보았다. 고려 말에는 성리학적 자연관의 영향으로 향약론이 대두하면서 토산 약초를 구해 약포(藥圃)를 가꾸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의료가 국정 운영의 핵심으로 인식되었던 조선 전기에 이르러 향약 정책과 제도 시행이 이루어졌는데, 그 중 하나가 약초의 확보·증식·토산화 등을 위한 종약전(種藥田)이라는 의료 시설이었다. 결국 종약전을 통해 의약학의 발달, 지리에 대한 재인식과 함께 일어난 토산 약초에 대한 관심, 그리고 강력한 왕권의 정책에 의해 15세기경부터 한반도에 왕립 약초원이 운영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3장에서는 조선 후기인 18세기 후반, 박물학적 경향 속 정원 문화의 변화 양상을 검토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사물의 이치를 탐구해 지식을 넓힐 수 있다는 ‘격물치지(格物致知)’가 바람직한 학문 태도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사물에 대한 몰두를 가리키는 ‘벽(癖)’ 예찬론을 낳고, 수집가와 박물학자를 배태하였다. 정원과 원예 문화에서도 박물학적 경향이 나타났는데, 새로운 화훼 풍속으로 기화이초 애호와 수집 열기가 확인되며, 더 나아가 화훼 고증·관찰·명명과 같은 탐구 경향도 엿보인다. 따라서 조선 후기 애호가의 정원은 화훼 수집과 탐구라는 식물원의 몇 가지 역할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4장에서는 개화기인 19세기 후반, 박물학 교육이 제도화되던 시대의 식물원 개념과 그 형성 과정을 밝혔다. 사회 개혁의 일환으로 대두된 개화(開化)사상은 문명국에 이르기 위해 서구 문물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형성했다. 이에 따라 서양을 통해 박물학 교육을 비롯해 각종 근대 문물이 유입되었으며, 식물원의 유입 경로 역시 마찬가지 양상을 보였다. 사절단과 유학생 등 개화기 조선의 지식인들이 해외 유수의 식물원을 견문하는 과정을 통해 식물원의 정의, 특성, 역할 뿐 아니라 필요성을 인식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적인 의미의 식물원 개념이 적어도 19세기 후반 국내에 도입되어 논의되고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5장에서는 20세기 초 식물분류학의 여명기에 설립된 식민지 식물원, 창경원 식물원을 재고하였다. 창경원 식물원은 과학 탐구 기관을 표방했으나 당시 식물학계에서 연구 기관으로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창경원 식물원의 탄생은 오히려 한·일 양국에서 정치적 혹은 문화적으로 계몽된 상태를 가리켰던 취미 담론의 출현과 관련해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창경원 식물원이 식물에 대한 취미를 제공함으로써 대중을 교양 시민(혹은 신민)으로 양성하는 전시와 교육 기관으로 논의되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연구 결과 한국 식물원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 강점기 이전에 식물원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식물 연구와 교육 및 전시 기능은 확인되지 않으나, 의료기구 종약전에서 약초라는 범주에 속한 식물을 ‘수집’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식물 교육 및 전시 기능은 엿보이지 않으나, 애호가의 정원에서 약초라는 범위 이상의 보다 다양한 식물을 ‘수집’한 양상을 비롯해 박물학적 ‘탐구’ 경향이 나타났다. 게다가 식물원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때가 일제 강점기 이전인 개화기이고, 비록 담론에 불과했으나 이때 식물원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더 나아가 필요성이 제기된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 이전에 이미 약초원으로서, 화훼 탐구 정원으로서, 혹은 담론으로서 식물원은 태동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둘째, 식물원은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한 것이 아니다. 종약전, 애호가의 정원, 개화기의 식물원 논의, 그리고 창경원 식물원의 조성 주체와 탄생 맥락은 서로 달랐다. 결국 한국 식물원의 진화 과정은 불연속적이며 산발적인 궤적을 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종약전, 애호가의 정원, 개화기 지식인의 식물원 견문록, 창경원 식물원으로의 한국 식물원의 탄생에 대한 지적 여정을 통해 이들이 오늘날의 식물원에 전하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식물원의 존재의 이유이다. 식물원은 지식을 생산하고 확산시키는 발판이며, 구체제를 혁신하기 위해 모색하거나 도입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산물이고, 안목과 교양을 쌓는 수단이었다. 다시 말해, 한국 식물원의 역사는 식물원이 더 나은 삶을 향한 ‘플랫폼(platform)’이라는 존재임을 증명해보인 궤적이었다.
목차
- Chapter 1. Introduction 11. Research Background and Purpose 12. Research Scope and Method 63. Related Literature and Studies 16Chapter 2. Physic Gardens in the Age of Herbal Medicine Study, 13-15 Century 211. Herbal Study and Systems in Ancient Times 21Medicine and Herbal Study 21The Interest in Native Herbs and Yakpo in the Late Goryeo Dynasty 262. The Jong-yakjeon in the Joseon Dynasty 32King Sejongs Hyangyak Policy 32Jong-yakjeon: Increase and Localization of Medicinal Herbs 373. Conclusion: Benevolent Kings Medicinal Herb Garden 47Chapter 3. Gardens of Aficionados in the Age of Natural History, 18-19 Century 501. The Emergence of Natural History and Aficionados 50New Intellectual Paradigm: Natural History 50The Pursuit of Byeok: From Wawusangzhi to Gewuzhizhi 58The Emergence of Aficionados: Dilettantes and Connoisseurs 612. Gardens of Aficionados 68Changes in Gardens and Horticulture in the Late Joseon Dynasty 68Byeok for Flowers: Collection and Observation 72Ryu Bak and Baekhwaam 833. Conclusion: Gentlemens Repository of Flowers and Knowledge 102Chapter 4. Visits to Botanical Gardens in the Age of Enlightenment, 1876-1910 1051. The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Movement and the Expansion of Knowledge 105The Rise of Natural History as a New Thought 105The Rise and Spread of Gaehwa Thought 109Exploration of the West and the Pursuit of Civilization 1122. Visits to Botanical Gardens in the World 120Korean Delegations'' Visits to Botanical Gardens 120Overseas Students'' Visits to Botanical Gardens 1373. Conclusion: Western Gardens and Models of Civilization 147Chapter 5. The Changgyeongwon Botanical Garden in the Age of Plant Taxonomy, 1910-1945 1501. Botanical Research at the Changgyeongwon Botanical Garden 150Establishment of the Changgyeongwon Botanical Garden 150The Rise of Korean Botany and Botanists 1592. Developing Taste at the Changgyeongwon Botanical Garden 173Shumi: Colonial Politics and Botanical Gardens 176Chwimi: Men of Culture and Botanical Gardens 1843. Conclusion: Colonial People, Modern Citizens and the Changgyeongwon Botanical Garden 195Chapter. 6 Conclusion 198KOREAN VERSION 207BIBLIOGRAPHY 372ABBREVIATIONS 393GLOSSARY 394국문초록 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