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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본 연구는 화성 옹성의 성격을 분석하여 화성축성의 의의를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화성의 방어시설물에 관한 연구는 주로 화성에 적용된 축성술과 시설물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화성 옹성은 화성에 적용된 방어시설물 중 하나로 언급되었다. 옹성은 조선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성문 방어시설물로서 조선시대에도 계속해서 그 중요성이 확인되었다. 옹성은 방어적 이점이 있지만 공역의 어려움이 계속해서 제기되었다. 공영의 어려움에도 화성은 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모든 성문에 옹성이 설치되었다. 화성은 평지성이고 해자가 없어 적군이 접근하기 쉬웠다. 성문은 개폐하는 기능의 특성상 성곽에서 가장 취약한 시설일 수밖에 없고 적군이 쉽게 접근하여 공격할 확률이 높았다. 화성의 가장 취약한 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성문을 방어하던 대표적 방어시설이 화성 옹성이었다. 따라서 화성 옹성 연구는 화성 성곽 연구의 새로운 토대를 구축하는 시금석이 되고자 한다.
이와 함께 본 연구는 화성이 평지성에 축성된 배경을 논하고 화성 축성의 기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정조대까지 논의되던 도성방어체제와 평지성 방어체제, 유수부체제를 논하고 화성 축성의 모범을 알 수 있는 『성제고』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기준으로 삼아, 『화성성역의궤』에 나타난 화성 옹성의 모습과 비교하여, 그 특징과 성격을 조명하려 한다.
한편 조선시대 성곽방어체제에서 산성은 주효하게 다뤄졌다. 다만 정권을 안정화하기 위해 도성 방어체제가 등장하면서 평지성 방어체제와 4부 유수부체제가 나타났다. 화성은 이런 배경 속에서 수원에 축성되었다. 정조는 평지성의 실제적인 방어능력을 갖추기 위해 중국성제를 도입하여 『성제도설』로 정리하였다. 『성제도설』의 내용은 『성제고』를 통해 알 수 있다.
화성 옹성은 『성제고』에서 제시된 성제를 전체적으로 잘 따르고 있다. 다만 몇몇 부분에서 옹성의 변형이 있었다. 그것은 조선의 군사적인 현실에 맞춘 변형은 아니었다. 또한 『성제고』는 성의 기본 모습으로 해자와 추가적인 방어시설물을 제시하나 화성에 설치되지는 않았다.
화성의 수성절목을 통해, 화성의 주요 방어거점인 북옹성과 남옹성에는 성문 수성군에 달하는 인원이 배치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북옹성과 남옹성에는 많은 수의 수성군이 배치되었다.
요컨대 화성 옹성은 화성의 핵심적인 방어시설물이지만 형식의 변형이 있었다. 이것은 조선의 군사적인 여건에 따른 부분은 아니었다. 화성 옹성의 변형은 화성이 효과적인 외적방어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한다. 또한 『성제고』에 따르면 화성은 성문 및 옹성 등의 방어력을 높일 방법이 더 존재했으나 이것이 모두 적용되지는 않았다. 화성 옹성은 외적을 막기에는 미비점이 있었다. 다만 화성 축성시기 조선정부의 위협은 주로 국내의 것이었다. 그것은 무신난과 정조 즉위초기 암살위협이 대표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보면 화성 축성은 외적의 효과적인 방어가 아니라 국내통치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반란군에게서 성문을 수비하는 것은 옹성이면 충분했다. 해자 등이 설치되지 않은 것은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었다. 화성 옹성을 바탕으로 본 화성 축성의 의의는 국내 통치체제의 강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조선후기 방어시설물로서 해자의 위치와 성격, 현황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를 통해 보완되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본 연구는 화성이 평지성에 축성된 배경을 논하고 화성 축성의 기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정조대까지 논의되던 도성방어체제와 평지성 방어체제, 유수부체제를 논하고 화성 축성의 모범을 알 수 있는 『성제고』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기준으로 삼아, 『화성성역의궤』에 나타난 화성 옹성의 모습과 비교하여, 그 특징과 성격을 조명하려 한다.
한편 조선시대 성곽방어체제에서 산성은 주효하게 다뤄졌다. 다만 정권을 안정화하기 위해 도성 방어체제가 등장하면서 평지성 방어체제와 4부 유수부체제가 나타났다. 화성은 이런 배경 속에서 수원에 축성되었다. 정조는 평지성의 실제적인 방어능력을 갖추기 위해 중국성제를 도입하여 『성제도설』로 정리하였다. 『성제도설』의 내용은 『성제고』를 통해 알 수 있다.
화성 옹성은 『성제고』에서 제시된 성제를 전체적으로 잘 따르고 있다. 다만 몇몇 부분에서 옹성의 변형이 있었다. 그것은 조선의 군사적인 현실에 맞춘 변형은 아니었다. 또한 『성제고』는 성의 기본 모습으로 해자와 추가적인 방어시설물을 제시하나 화성에 설치되지는 않았다.
화성의 수성절목을 통해, 화성의 주요 방어거점인 북옹성과 남옹성에는 성문 수성군에 달하는 인원이 배치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북옹성과 남옹성에는 많은 수의 수성군이 배치되었다.
요컨대 화성 옹성은 화성의 핵심적인 방어시설물이지만 형식의 변형이 있었다. 이것은 조선의 군사적인 여건에 따른 부분은 아니었다. 화성 옹성의 변형은 화성이 효과적인 외적방어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한다. 또한 『성제고』에 따르면 화성은 성문 및 옹성 등의 방어력을 높일 방법이 더 존재했으나 이것이 모두 적용되지는 않았다. 화성 옹성은 외적을 막기에는 미비점이 있었다. 다만 화성 축성시기 조선정부의 위협은 주로 국내의 것이었다. 그것은 무신난과 정조 즉위초기 암살위협이 대표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보면 화성 축성은 외적의 효과적인 방어가 아니라 국내통치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반란군에게서 성문을 수비하는 것은 옹성이면 충분했다. 해자 등이 설치되지 않은 것은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었다. 화성 옹성을 바탕으로 본 화성 축성의 의의는 국내 통치체제의 강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조선후기 방어시설물로서 해자의 위치와 성격, 현황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를 통해 보완되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목차
- Ⅰ. 서론 1Ⅱ. 축성술 논의와 성제의 규식화 8Ⅲ. 화성의 성문 방어시설과 옹성 체제 221. 화성 성역에 기획된 옹성 221) 북옹성과 남옹성 262) 동옹성과 서옹성 342. 옹성 방어력 강화 기술의 도입 383. 화성 성역에 제외된 방어시설 42Ⅳ. 화성 옹성의 군제사적 의미와 성격 51Ⅴ. 결론 55참고문헌 59부 록 62Abstract 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