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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대학교, 목포대학교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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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탐라는 곽지리식토기에 뒤이어 나타나는 고내리식토기가 확인되는 것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를 구분한다. 그동안 탐라후기 편년은 자체기록의 전무, 빈약한 고고학자료의 문제로 외부유물 편년에 의존해왔으나, 2013년부터 탐라후기의 자료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본고는 탐라후기의 물질문화 재정립을 위해 작성하게 되었다.
    탐라후기의 유구는 주거지와 수혈유구 중심으로 확인된다. 주거지의 수가 적고 수혈이 대부분 중첩되어 확인되는 양상이다. 주거지는 3개의 형식으로 나뉘며 수혈식주거지에서 점차 지상가옥화되는 양상을 띤다.
    토기의 시간적 변화상을 기준으로 심발형토기를 Ⅰ, Ⅱ, Ⅲ의 세 형식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변화요인을 도기제작방식의 유입이라는 새로운 제도기술의 영향으로 보았다. 그리고 토기의 변화상과 함께 주거지에서의 변화를 기준으로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Ⅰ기는 기원후 6세기 초∼7세기 중엽으로 외반구연호의 전통에서 점차 새로운 제도기술로의 탈피가 확인된다. 유적은 제주도 북서부, 남서부에서 확인되며 수혈식의 원형주거지가 확인된다. 토기는 구연부가 크게 외반하는 양상이며 구경이 저경보다 넓다. 회청색경질토기와 단조의 철투겁창, 철부 등이 공반되는 양상이며, 서남부의 상모리유적에서는 다수의 채토수혈이 확인되어 당시 서남부지역의 토기 원료 산지로 판단된다.
    이때는 백제가 한반도 서남부권에서의 영향력의 팽창으로 인해 전남서부지역과의 교류 및 백제와의 신속 관계를 맺음으로서 기존 무문토기 제작방식의 제도기술이 저부와 동체부를 따로 제작하여 접합하는 방식으로의 진보가 이루어진 것을 기점으로 하여 시작된 것으로 보았다. 이는 새로운 문물(철기, 토기 등) 유입, 백제계의 토기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 반면 마한계통 토기인 양이부호의 출토되어 알 수 있다. 이 당시에 탐라는 백제로부터 관직을 받고 조공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일본과의 교류 또한 이루어졌다.
    Ⅱ기는 7세기 후엽∼8세기 중엽으로 전형적인 심발형토기의 형태가 갖춰진 시기이다. 유적은 해안을 따라 제주도 전반적으로 확인되며 수혈식의 말각방형주거지가 확인된다. 토기는 구연부가 대체적으로 직립 또는 짧게 외반하는 양상이며 점차 구경과 저경의 너비가 같아진다. 토기의 기종이 다종다양화되는 시기이며 제주도 전반적으로 심발형토기가 확산된다. 장동병, 단경병, 반구병 등 다수의 인화문도기가 공반되어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물질문화의 양상은 통일신라와 탐라와의 직접적인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660년 백제가 멸망한 이후 662년 신라에 신속되며 탐라는 직접지배방식 속에서 많은 문물의 유입이 이루어지며 점차 자체 제도기술이 발전하였다. 이는 고내리생산유적에서 다수의 채토·소성·폐기수혈과 공반된 토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일본과의 통교도 남해안 일대를 지나 대마도-이키섬을 지나서 큐슈 북부와의 교류도 이루어지게 되는 등 대내외적 관계가 확인되었다.
    Ⅲ기는 8세기 후엽∼10세기 초로 심발형토기의 기종이 점차 줄어드는 시기이다. 유적은 제주도 북서부, 북부, 북동부에서 확인되며 주거지는 지상식의 원형주거지가 확인된다. 토기는 구연부가 내만하거나 내만 후 짧게 외반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구경이 저경보다 작아지는 양상이다. 공반유물은 대호편과 무문의 장동병, 반구병, 1면편병, 4면편병 등이 확인되고 있다. 또한 도기만 폐기된 제사유적이 용담동과 귀덕리에 형성되어 당시 의례적인 행위가 이루어졌고 그만큼의 세력을 갖춘 곳이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후 탐라후기는 초기 단계의 해무리굽 청자가 확인되는 층위부터 공반되는 경우가 없기에 아무리 늦어도 10세기가 되면 소멸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때는 고려가 새로이 한반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기로 강력한 왕권국가의 등장에 의해 재지적인 탐라의 물질문화 단순화 및 소멸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중국 월주요에서 자기가 수입되는 등 외부의 문화가 내부의 문화를 대체하는 상황에 직면하며 탐라의 후기문화는 점차 소멸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탐라후기의 유적은 대다수가 해안가를 중심으로, 또한 가까운 포구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이후 고려시대의 16현촌의 성립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목차

    1. Ⅰ. 머리말 1
      1. 연구사 1
      2. 연구목적 및 방법 8
      Ⅱ. 탐라후기 유적검토 10
      1. 입지와 분포 10
      2. 유적 검토 16
      Ⅲ. 유구 · 유물 분석 및 편년 27
      1. 유구 분석 27
      1) 주거지 27
      2) 수혈유구 30
      3) 패총 35
      4) 동굴·바위그늘 37
      5) 제사유적 39
      2. 출토유물분석 41
      1) 토기 41
      (1) 기종분류 43
      (2) 속성분석 및 형식분류 46
      2) 도기 52
      3) 철기 54
      4) 기타유물 56
      3. 편년 59
      Ⅳ. 탐라후기의 고고학적 성격 65
      1. 탐라후기 문화의 전개과정 65
      2. 탐라후기의 성격 80
      Ⅴ. 맺음말 84
      참고문헌 87
      국문초록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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