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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 자료유형
- 학위논문
- 저자정보
- 지도교수
- 이병희
- 발행연도
- 2020
- 저작권
- 한국교원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23
초록·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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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고려시대 전반에 걸쳐 고려로 유입된 양의 현황과 이를 사육하고 활용하는 모습에 대해 규명하였다. 더 나아가 북방유목국가와의 외교 관계에서 양이 가지는 의미를 고찰하여 외교 관계에서 말이나 매 못지않게 중요했던 양을 재조명하고자 하였다.
고려 초기 양은 제례와 빈례를 위하여 소규모로 사육하는 정도였으나, 북방유목민족과의 관계 속에서 고려에 대규모의 양이 유입된다. 요와 금은 회사와 하사품으로 고려에 양을 보냈는데, 특히 횡선사를 통하여 대개 3년에 1번 주기로 많게는 한 번에 2,000마리의 양을 고려에 사여하였다.
반면 원은 고려에 대규모의 양을 하사한 기록은 적지만, 고려에 거주하거나 왕래하는 사신과 고려에 시집 온 공주들의 식문화를 생각한다면 양은 일상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많은 수가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로 유입된 양은 여러 방면에서 활용되었다. 먼저 제사의 희생제로 이용되었는데, 고려로 유입된 양은 여러 방면에서 활용되었다. 먼저 제사의 희생제로 환구와 적전의 기본 희생 사용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졌다. 원간섭기에는 제릉과 문선왕묘에서 추가적으로 이용되며 그 중요성이 증대되었다. 또한 고려의 일상생활에서 양의 젖과 털, 가죽을 활용하기도 하였다. 양유를 응고시킨 양락과 발효시킨 양주를 먹었으며, 양모와 양피를 이용한 옷을 만들어 겨울을 나기도 하였다.
양은 사신 접대에서도 중요하게 사용되었는데, 북방유목국가는 물론이며 송과 명으로 이어지는 한족국가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식재료였기 때문이다. 특히 양은 원의 중심식육이었기에 원의 사신들과 고려에 시집온 공주들의 식사에 사용되었다. 더 나아가 양육은 고려 왕실은 물론 귀족층으로 점차 확대되어 그 이용이 훨씬 증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양문화는 고려에 정착되지 못하였는데, 고려의 덥고 습한 기후와 원간섭기 이전 육식을 선호하지 않는 문화가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고려의 양 공급은 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원의 쇠락은 고려의 양 유입을 줄어들게 하였고, 양육 이용 또한 감소하게 된다.
고려 이후 이어지는 조선에서는 북방으로부터 양 유입이 단절되었다. 이는 일상생활에서의 양 활용은 물론이며 빈례와 제례에서도 문제를 야기하여 태종은 양의 이용을 제례에 국한하게 된다. 이후 태종은 양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하여 토착화에 심혈을 기울였고 세종대에는 양의 번식 또한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의 활용은 여전히 제례에만 국한되어 그 밖의 이용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고려 초기 양은 제례와 빈례를 위하여 소규모로 사육하는 정도였으나, 북방유목민족과의 관계 속에서 고려에 대규모의 양이 유입된다. 요와 금은 회사와 하사품으로 고려에 양을 보냈는데, 특히 횡선사를 통하여 대개 3년에 1번 주기로 많게는 한 번에 2,000마리의 양을 고려에 사여하였다.
반면 원은 고려에 대규모의 양을 하사한 기록은 적지만, 고려에 거주하거나 왕래하는 사신과 고려에 시집 온 공주들의 식문화를 생각한다면 양은 일상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많은 수가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로 유입된 양은 여러 방면에서 활용되었다. 먼저 제사의 희생제로 이용되었는데, 고려로 유입된 양은 여러 방면에서 활용되었다. 먼저 제사의 희생제로 환구와 적전의 기본 희생 사용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졌다. 원간섭기에는 제릉과 문선왕묘에서 추가적으로 이용되며 그 중요성이 증대되었다. 또한 고려의 일상생활에서 양의 젖과 털, 가죽을 활용하기도 하였다. 양유를 응고시킨 양락과 발효시킨 양주를 먹었으며, 양모와 양피를 이용한 옷을 만들어 겨울을 나기도 하였다.
양은 사신 접대에서도 중요하게 사용되었는데, 북방유목국가는 물론이며 송과 명으로 이어지는 한족국가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식재료였기 때문이다. 특히 양은 원의 중심식육이었기에 원의 사신들과 고려에 시집온 공주들의 식사에 사용되었다. 더 나아가 양육은 고려 왕실은 물론 귀족층으로 점차 확대되어 그 이용이 훨씬 증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양문화는 고려에 정착되지 못하였는데, 고려의 덥고 습한 기후와 원간섭기 이전 육식을 선호하지 않는 문화가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고려의 양 공급은 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원의 쇠락은 고려의 양 유입을 줄어들게 하였고, 양육 이용 또한 감소하게 된다.
고려 이후 이어지는 조선에서는 북방으로부터 양 유입이 단절되었다. 이는 일상생활에서의 양 활용은 물론이며 빈례와 제례에서도 문제를 야기하여 태종은 양의 이용을 제례에 국한하게 된다. 이후 태종은 양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하여 토착화에 심혈을 기울였고 세종대에는 양의 번식 또한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의 활용은 여전히 제례에만 국한되어 그 밖의 이용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목차
- Ⅰ. 서 론 1Ⅱ. 양의 종류와 사육 51. 양의 종류와 특징 52. 양의 서식지와 사육 10Ⅲ. 북방의 양 유입 171. 요(遼)로부터 양 유입 172. 금(金)으로부터 양 유입 223. 원(元)을 통한 양 유입 증가 25Ⅳ. 양 활용과 그 변천 301. 제사의 희생물(犧牲物) 302. 귀빈(貴賓) 접대와 양육(羊肉) 343. 일상음식과 의복 생활에서 활용 384. 양육 소비의 증가와 급감 42Ⅴ. 결 론 46참고문헌 49ABSTRACT 55부 록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