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위논문
저자정보

차서연 (단국대학교, 단국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최연우
발행연도
2020
저작권
단국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5

표지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3)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연구는 『喪禮四箋』 「喪服商」을 중심으로 茶山이 재해석한 喪服의 형태와 관점을 파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茶山은 1801년부터 18년간의 유배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때 예학 연구에 몰두하여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특히 유배 기간의 반 이상을 喪禮 연구에 집중하여 스스로 불후의 저술로 자부하는 『喪禮四箋』을 완성하였다. 조선 유학자들이 行禮의 편의를 고려하여 喪禮의 의절과 그에 소용되는 물품, 상복의 종류와 착용 기간 등 실제적인 문제에 집중한 반면 茶山은 行禮의 근거 또는 연원이 되는 古禮에 초점을 맞추고 喪禮의 의절을 해석한 「喪儀匡」, 喪禮에 필요한 기물에 대한 언급인 「喪具訂」, 喪服의 제도와 형태를 고찰한 「喪服商」, 五服의 기간을 논한 「喪期別」의 네 가지 범주로 구분하여 고찰하였다.
당시 조선의 문제를 文의 쇠퇴라고 진단한 茶山은 文을 닦는 일에 힘써야 質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茶山에게 文은 禮樂이고 質은 孝弟忠信으로, 禮樂은 孝弟忠信을 전제로 성립하며 禮樂을 닦는다면 孝弟忠信을 회복하게 됨을 의미한다. 茶山은 古禮의 원형을 복원하는 방법을 통해 禮樂을 정립하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라고 여기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였다. 古禮를 복원하여 기준을 재정립하고 朱子가 宋代의 時宜를 반영하여 『家禮』로 성문화한 길을 따라 ‘조선’이라는 달라진 시간과 공간이 반영된 喪服 제도를 재구성하겠다는 茶山의 문제의식은 실행 가능한 예제를 수립하겠다는 것이 그 목표였고 喪服에 관한 구체적인 결과물이 「喪服商」이다.
茶山이 제시한 喪服의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喪服의 경학적 근거인 『儀禮』 「喪服」을 중심으로 하는 古禮와 조선 喪服 제도의 전거인 『家禮』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古禮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漢代와 唐代에 이루어진 注와 疏의 해석을 참조할 수 밖에 없지만, 茶山은 이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 이유는 注가 ‘자기의 자의적인 이해에 기초하여 經을 해석[以意解經]’하고, 疏는 注를 깨뜨리지 않는[疏不破注] 원칙을 준수하여 ‘注로 經을 해석[以注解經]’해서 古禮가 폐하여지고 禮의 本意는 가려지고 왜곡되어 결국 禮가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게 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茶山은 이를 극복하고자 ‘經을 經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家禮』는 조선에서 喪禮를 시행하는 기준이지만, 지금 조선의 상황은 朱子의 시대와 다르므로 朱子의 예설도 모두 따를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茶山은 朱子가 古禮를 기반으로 宋代의 時宜를 반영하여 성문화한 방법을 따라 조선에서 수행할 수 있는 喪服 제도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茶山은 漢代 예학의 장점인 考古와 宋代 예학의 장점인 窮理를 결합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수립하여 古禮를 기준으로 『家禮』를 참작하면서 조선의 시속까지 포섭하였다. 朱子가 그랬듯이 古禮를 기준으로 禮를 재정립하는 일이 시급한 문제라는 인식과 함께 ‘조선’이라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古禮가 시행될 수 있도록 구축하려는 의도였다.
茶山은 注疏의 해석방법론과 비일관성 및 비효율성을 비판하고, 朱子가 時宜를 적용한 부분은 따르되 注疏의 오류를 답습한 부분 역시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를 토대로 茶山이 제안하는 남자의 喪服은 『周禮』 「司服」의 “무릇 凶事에는 弁服을 입는다”라는 기록을 근거로 喪服이 弁服이고, 옛날 弁服이 조선의 朝服과 祭服이라고 원칙이다. 이 원칙의 의미는 말 그대로 喪服의 기본적인 형태는 弁服과 같다는 것이고, 喪服 가운데 弁服과 같은 요소에 대해 별도로 언급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는 또 다른 원칙을 파생시킨다. 부인의 喪服을 논증할 때 제시하는 원칙은 남자의 喪服에 준하되 가볍게 한다[從輕]는 것이다. ‘남자의 상복에 준한다’는 것은 남자 상복을 논증할 때 제시한 두 가지 원칙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이고, ‘가볍게 한다’는 것은 질박함을 중시하여 벗는 의절은 있지만 바꾸는 의절이 없고 소략하여 변화를 줄인다는 의미이다. 茶山은 이 원칙을 근거로 喪服의 형태를 일관되게 논증하였다.
注疏의 해석이 아닌 十三經을 중심으로 『家禮』까지 참작해서 茶山이 제안하는 喪服의 특징과 含意는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는 喪服의 위상을 높이려고 하였다. 茶山이 제시한 喪服은 조선의 朝服과 祭服의 형태로, 吉禮에 朝服과 祭服을 착용하듯 凶禮에 朝服과 祭服의 제도에 따른 喪服을 입는다는 것이다. 朝服과 祭服에 조응하는 것으로 보는 茶山의 제안은 喪服의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이다. 深衣의 요소도 적극 활용하여 논증하였는데, 이는 喪服을 단순히 슬픔을 표상하는 복식만이 아닌 유학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옷과 동등한 위상을 갖는 복식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있다.
두 번째로 喪服 제도를 표준화하고 실용적인 부분을 강조하였다. 茶山은 喪服의 표준 치수를 제시하고 이를 기준으로 사람의 몸집에 따라 줄이거나 늘릴 수 있도록 제안하였다. 이는 작거나 커서 입지 못하거나 자의적으로 만들어 입는 경우를 대비하여 조선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喪服을 입고 의례를 행할 수 있도록 제시한 것이다. 실용적인 부분을 강조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喪服이 최고의 禮服임과 동시에 喪禮 기간동안 실제로 입고 생활하는 일상복이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喪禮의 수행 가능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朝服과 祭服, 深衣의 형태로 喪服을 해석한 이면에는 조선 사람들에게 익숙한 형태를 제시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조선 사람들에게 익숙한 형태라면 제작에 어려움이 없을 뿐 아니라 喪禮에 대한 거부감도 줄일 수 있어 喪禮의 수행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茶山은 남자뿐 아니라 부인도 법도에 맞는 喪服을 제작해서 입도록 논증함으로써 부인도 喪禮의 주체적인 수행자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1
1. 연구 목적과 의의 1
2. 연구사 정리 4
3. 연구 방법과 내용 8
Ⅱ. 『喪禮四箋』의 저술 목적과 구성 10
1. 저술 배경과 목적 10
1) 저술 배경 10
2) 목적 14
2. 체제와 내용 18
1) 체제 18
2) 내용 20
Ⅲ. 古代 喪服制度에 대한 茶山의 인식 25
1. 古代 喪服制度의 성립과 喪服의 결정 기준 25
1) 『儀禮』와 『禮記』의 성립과 체제 25
2) 喪服의 결정 기준 27
2. 古代 喪服의 구성과 형태 31
1) 五服 32
2) 기타 喪服:?服, ?衰服, 婦人服 56
3. 注疏에 대한 茶山의 비판 68
1) 해석방법론 비판 68
2) 비효율성과 비일관성 비판 77
Ⅳ. 『家禮』 喪服制度에 대한 茶山의 인식 82
1. 『家禮』의 성립과 조선 전래 82
1) 저술 배경과 목적 82
2) 조선 전래와 위상 86
2. 『家禮』 喪服의 구성과 형태 88
1) 五服 88
2) 기타 喪服:?服, 婦人服 108
3. 『家禮』에 대한 茶山의 인식 117
1) 時制 수립 시도에 대한 긍정 117
2) 注疏의 오류 답습에 대한 비판 121
Ⅴ. 茶山이 제안한 喪服의 형태 128
1. 喪服의 공통요소 128
1) 명칭의 의미[名義] 128
2) 총괄적인 제도[總制] 131
2. 男子 喪服의 구성과 형태 135
1) 喪冠, 首? 136
2) 衰裳 145
3) 中衣 155
4) 帶 157
5) 지팡이[杖], 신[?] 164
3. 婦人 喪服의 구성과 형태 167
1) 머리 장식 167
2) 衣服 175
3) 帶 180
4) 지팡이[杖], 신[?] 183
4. 茶山 喪服의 특징과 含意 184
1) 古禮의 원형 복원 184
2) 조선의 시속 반영 189
3) 喪服의 위상과 수행 가능성 제고 193
Ⅵ. 맺음말 196
참고문헌 202
영문요약 207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