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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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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평양시 대성구역에 위치한 안학궁은 일제강점기부터 고구려의 평양 도읍기 평지성 여부 문제 등으로 여러 연구자의 주목을 받아왔다. 장기간에 걸친 발굴 끝에 1973년 정식으로 보고서가 간행되어 자세한 내용이 알려졌다. 조사를 진행한 김일성종합대학교가 안학궁의 연대를 장수왕이 천도한 427년으로 보고하였으나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북한 학계의 입장과는 달리 일본 학계는 안학궁을 고려 궁성으로 보는 견해를 꾸준히 개진하고 있으며, 양쪽 견해가 공존하는 국내 학계에서는 직접 발굴을 담당했던 북한학계의 입장을 수용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연대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안학궁을 고구려 유적으로 전제하게 되면 자칫 고구려 평양 도읍기 연구에 여러 오류가 생길 소지가 다분하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안학궁의 연대를 검토하기 위하여 안학궁 아래문화층에서 보고된 십여 기의 석실분 중 발굴·조사된 3기 석실분과 그 출토유물, 그리고 안학궁 출토 기와류를 연구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안학궁이 3기의 석실분 상부를 파괴하고 조성된 만큼 양자의 선후관계는 분명하다. 다만, 유구 평면구조를 제외한 석실분 3기의 벽체와 천장 구조 등을 알 수 없어 석실분 출토유물의 검토를 통해 보완하였다. 3호 석실분에서 출토된 호형토기, 병형토기, 뚜껑 등은 5세기 전반 ~ 6세기 전반으로 편년되며 이를 파괴하고 조성된 안학궁은 적어도 6세기 이후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안학궁 출토 평기와의 외면 중앙에는 횡방향 문양대와 선명한 어골문이라는 고려 평기와의 특징이 나타나지만 통일신라에서 유행했던 문양 요소도 함께 지니고 있어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막새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통일신라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드림새가 드리워진 호형의 암막새가 출현함을 고려하면, 안학궁 암막새 역시 그 이후로 판단되며 암막새에 표현된 와상문과 퇴화된 귀면문, 그리고 이형암막새 등의 존재는 통일신라의 영향을 간직한 고려 초기의 것으로 이해된다. 수막새의 경우, 변형구획선과 입체적인 연판 표현 등은 고구려적 요소이고 연주문과 세판연화문, 수막새 접합강화기법 등은 통일신라 요소로 이해되고 있다. 특히 수막새 배면에 전사된 수키와 선단부의 긋기흔은 통일신라 시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접합강화기법으로 고려 시대에도 보고사례가 있다. 이외에 초화문의 간판과 연판의 고부조 양감 등은 고려 시대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 역시 통일신라 시대의 특징을 간직한 고려 시대 자료로 판단하였다.
    ‘귀면’으로 보고된 안학궁 귀면와는 인면문 요소가 강하여 고구려의 귀면 도상과는 차이가 있다. 또한 고부조의 양감으로 볼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 역시 고려 귀면와의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귀면와는 고구려와 통일신라에서 성행하였던 귀면문이 점차 퇴화하면서 나타난 것으로 판단하여 고려 초기일 가능성을 상정해보았다. 치미는 전체적 형상이 발해 도성 출토품과 유사하며 종대의 연주문 역시 남북국시대 치미에서 많이 보이는 특징이다. 또한 치미 몸통에 보이는 비늘 문양은 치미가 치문으로 변해가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추정되며 통일신라~고려 치미편에서 이러한 비늘 문양이 보고된 바 있다. 따라서 안학궁 치미는 남북국시대의 특징을 간직한 고려 초기의 것으로 보인다.
    안학궁은 출토된 기와류의 특징으로 보아 고려 초기 정종 대에 서경 천도를 계획하며 조성하였던 궁궐로 보는 견해가 가장 적합한 것으로 생각된다. 안학궁 기와 연대가 통일신라 시대의 영향이 잔존하는 고려 초기 양상을 보이는 점과 고구려 복고현상을 보이는 안학궁 수막새의 양상이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정리하자면 3기 석실분과 안학궁 기와류를 통해 안학궁의 연대를 고려 초기로 추정할 수 있으며, 안학궁은 여러 정황과 기와류 분석에 근거할 때, 고려 정종 대에 조성한 궁성으로 보인다.
    다만, 정식 보고서에는 실리지 않아 출토 정황을 알 수 없는 일부 고구려 기와들이 안학궁 출토품으로 소개되고 있어 대성산성에서의 유입 가능성과 함께 안학궁 유적 아래층에 또 다른 고구려 건물지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목차

    1. 국문초록 ⅵ
      Ⅰ. 머리말 1
      1. 선행연구 검토 2
      2. 문제제기와 연구방법 8
      Ⅱ. 안학궁 아래문화층 석실분과 안학궁 유적 11
      1. 안학궁 아래문화층 석실분 11
      2. 안학궁 아래문화층 석실분 출토유물 14
      3. 안학궁 유적 15
      4. 안학궁 유적 출토유물 20
      Ⅲ. 안학궁의 연대 문제 31
      1. 안학궁 석실분과 출토유물의 연대 31
      2. 안학궁 출토 기와류의 연대 36
      1) 평기와 36
      2) 암막새와 수막새 40
      3) 귀면와와 치미 64
      4) 안학궁의 고구려 기와 75
      Ⅳ. 안학궁의 연대와 성격 78
      1. 안학궁의 연대 78
      2. 안학궁의 성격 81
      Ⅴ. 결 론 85
      참고문헌ㆍ누리집 89
      Abstract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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