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의약학
농수해양학
예술체육학
복합학
지원사업
학술연구/단체지원/교육 등 연구자 활동을 지속하도록 DBpia가 지원하고 있어요.
커뮤니티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와 전문성을 널리 알리고, 새로운 협력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네트워킹 공간이에요.
논문 기본 정보
- 자료유형
- 학위논문
- 저자정보
- 지도교수
- 양시은
- 발행연도
- 2021
- 저작권
- 충북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51
초록· 키워드
상세정보 수정요청해당 페이지 내 제목·저자·목차·페이지정보가 잘못된 경우 알려주세요!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란 백제 사비기에 고구려토기의 영향을 받아 등장하는 새로운 양식의 토기를 말한다. 연구대상은 양이부호, 직구호, 직구옹, 자배기, 시루, 대부완, 이배, 접시, 연통, 장동호, 옹, 합, 부형토기 등의 기종이 해당되며, 여기에 암문이 시문된 토기 편도 해당된다. 연구대상의 출토지는 부여, 익산 등 도성을 중심으로 확인되며, 대부분 생활유적에서 출토된다. 그리고 분묘 출토품은 옹관으로 사용된 양이부호와 자배기가 대다수이다.
이후 개별기종에 대한 특징들을 파악하고, 층위양상 및 공반유물과 같은 편년 자료를 활용하여, 기종별로 등장시기와 시간에 따른 변화양상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양이부호, 동이, 대부완, 장동호 등이 웅진기부터 등장하고, 나머지 기종들은 대부분 6세기 중엽~후엽에 등장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와 고구려토기와의 비교검토를 통해 5세기 고구려토기는 백제 웅진기 양이부호, 자배기와 관련 있음을 파악하였고, 나머지 기종들은 대부분 6세기 고구려토기와 관련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러나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에서는 고구려토기와는 다르게 자배기의 주구와 원저, 반원형의 증기공과 원저완 계통의 대부완, 연가의 투공형태 및 결합식 연통 등과 같이 백제의 전통적 토기 제작기법이 확인되었다. 또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에서는 타날흔이 다수 확인되고 있어 고구려토기와 큰 차이를 보인다. 이를 통해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의 생산주체는 백제공인이었음을 알 수 있고,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가 등장한 후 백제의 전통적인 토기 제작기법과 고구려토기의 형태가 융합되어 가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가 형성되고 정착되어 가는 과정은 3단계로 구분된다. 1단계는 6세기를 전후하여 고구려와의 문화접변으로 인해 양이부호, 직구호 등 일부 기종이 등장하는 단계이다. 도성(웅진) 외 지역에서 주로 출토되는데, 출토지역에 따라 해안지역(서천)과 내륙지역(공주, 부여)으로 구분된다.
해안지역은 5세기 고구려토기와 거의 동일한 제작기법으로 제작된 토기들이 확인되어 특징적이며, 내륙지역은 5세기대 고구려토기와 형태적으로 유사하지만 크기가 작고, 타날흔이 확인되는 등 해안지역 출토품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내륙지역 출토품 중 부여 화지산, 궁남지 등 부여 내부에서 출토된 고구려계 토기들은 소수의 고구려 포로들이 노역했던 흔적으로 추정된다.
2단계는 6세기 중엽에서 후엽으로,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단계이다. 이 무렵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의 거의 모든 기종이 출현한다. 그리고 2단계 토기는 중앙통제 하에 생산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도성 내 주요 유적에서 출토되는 것을 볼 때 왕실 및 귀족계층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2단계 토기는 형태적으로 6세기대 고구려토기와 유사함이 확인된다. 2단계 토기에서 6세기대 고구려토기의 영향이 확인되는 이유로는 위덕왕대 백제 왕실이 왕권 강화를 위해 주도한 불교의 수용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2단계 토기는 도성 내에서 출토되는 것, 6세기대 고구려토기와 관련 있는 것 등으로 보아 1단계 토기와는 성격과 출현 경로가 다르며, 두 단계의 토기는 서로 연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단절적인 관계로 파악된다.
3단계는 7세기를 전후한 시점부터 백제 멸망까지로, 고구려토기의 변천 양상과는 상관없이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가 자체적으로 변화해나가는 단계이다. 이는 사비양식 백제토기가 비록 고구려와의 영향 관계 하에서 도입되었지만 백제 공인들에 의해 제작되면서 고구려와는 관련 없이 자체적인 변화 발전을 거쳤음을 의미한다. 다만 대부완, 이배, 접시 등과 같은 기종은 형성 및 변화과정에서 중국 자기·금속기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서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의 형성배경에 대해 검토하였다. 기존에 제시된 고구려와의 문화접변으로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가 성립되었다는 견해는 문화접변으로 등장한 기종이 매우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능성이 낮으며, 고구려주민·舊백제민의 이주로 인해 형성되었다는 견해는 이주민과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의 격이 맞지 않아 가능성이 낮다.
기존 견해와 달리 본 연구에서는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의 형성배경에 대해 Peer Polity Interaction 모델을 이용해 해석을 시도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백제 한성기에 유행한 적석총과 고구려와 삼연의 문화적 동질성 등의 유사한 사례를 참고하였다. 그 결과 위의 두 사례와는 다르게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는 비교적 간접적인 상호작용(비 물질문화의 전이, 기술의 전달 등)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에서 확인되는 백제토기의 전통적인 일부 요소의 쇠퇴현상은 고구려토기의 편리성을 이어받은 사비양식 백제토기의 확산에 기인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즉, 고구려토기의 생활 편리성이 백제가 고구려토기 문화를 도입하는데 중요한 요인은 아니었을지라도, 사비양식 백제토기가 확산 및 발전하는데 있어 하나의 동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개별기종에 대한 특징들을 파악하고, 층위양상 및 공반유물과 같은 편년 자료를 활용하여, 기종별로 등장시기와 시간에 따른 변화양상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양이부호, 동이, 대부완, 장동호 등이 웅진기부터 등장하고, 나머지 기종들은 대부분 6세기 중엽~후엽에 등장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와 고구려토기와의 비교검토를 통해 5세기 고구려토기는 백제 웅진기 양이부호, 자배기와 관련 있음을 파악하였고, 나머지 기종들은 대부분 6세기 고구려토기와 관련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러나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에서는 고구려토기와는 다르게 자배기의 주구와 원저, 반원형의 증기공과 원저완 계통의 대부완, 연가의 투공형태 및 결합식 연통 등과 같이 백제의 전통적 토기 제작기법이 확인되었다. 또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에서는 타날흔이 다수 확인되고 있어 고구려토기와 큰 차이를 보인다. 이를 통해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의 생산주체는 백제공인이었음을 알 수 있고,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가 등장한 후 백제의 전통적인 토기 제작기법과 고구려토기의 형태가 융합되어 가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가 형성되고 정착되어 가는 과정은 3단계로 구분된다. 1단계는 6세기를 전후하여 고구려와의 문화접변으로 인해 양이부호, 직구호 등 일부 기종이 등장하는 단계이다. 도성(웅진) 외 지역에서 주로 출토되는데, 출토지역에 따라 해안지역(서천)과 내륙지역(공주, 부여)으로 구분된다.
해안지역은 5세기 고구려토기와 거의 동일한 제작기법으로 제작된 토기들이 확인되어 특징적이며, 내륙지역은 5세기대 고구려토기와 형태적으로 유사하지만 크기가 작고, 타날흔이 확인되는 등 해안지역 출토품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내륙지역 출토품 중 부여 화지산, 궁남지 등 부여 내부에서 출토된 고구려계 토기들은 소수의 고구려 포로들이 노역했던 흔적으로 추정된다.
2단계는 6세기 중엽에서 후엽으로,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단계이다. 이 무렵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의 거의 모든 기종이 출현한다. 그리고 2단계 토기는 중앙통제 하에 생산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도성 내 주요 유적에서 출토되는 것을 볼 때 왕실 및 귀족계층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2단계 토기는 형태적으로 6세기대 고구려토기와 유사함이 확인된다. 2단계 토기에서 6세기대 고구려토기의 영향이 확인되는 이유로는 위덕왕대 백제 왕실이 왕권 강화를 위해 주도한 불교의 수용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2단계 토기는 도성 내에서 출토되는 것, 6세기대 고구려토기와 관련 있는 것 등으로 보아 1단계 토기와는 성격과 출현 경로가 다르며, 두 단계의 토기는 서로 연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단절적인 관계로 파악된다.
3단계는 7세기를 전후한 시점부터 백제 멸망까지로, 고구려토기의 변천 양상과는 상관없이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가 자체적으로 변화해나가는 단계이다. 이는 사비양식 백제토기가 비록 고구려와의 영향 관계 하에서 도입되었지만 백제 공인들에 의해 제작되면서 고구려와는 관련 없이 자체적인 변화 발전을 거쳤음을 의미한다. 다만 대부완, 이배, 접시 등과 같은 기종은 형성 및 변화과정에서 중국 자기·금속기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서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의 형성배경에 대해 검토하였다. 기존에 제시된 고구려와의 문화접변으로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가 성립되었다는 견해는 문화접변으로 등장한 기종이 매우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능성이 낮으며, 고구려주민·舊백제민의 이주로 인해 형성되었다는 견해는 이주민과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의 격이 맞지 않아 가능성이 낮다.
기존 견해와 달리 본 연구에서는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의 형성배경에 대해 Peer Polity Interaction 모델을 이용해 해석을 시도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백제 한성기에 유행한 적석총과 고구려와 삼연의 문화적 동질성 등의 유사한 사례를 참고하였다. 그 결과 위의 두 사례와는 다르게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는 비교적 간접적인 상호작용(비 물질문화의 전이, 기술의 전달 등)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에서 확인되는 백제토기의 전통적인 일부 요소의 쇠퇴현상은 고구려토기의 편리성을 이어받은 사비양식 백제토기의 확산에 기인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즉, 고구려토기의 생활 편리성이 백제가 고구려토기 문화를 도입하는데 중요한 요인은 아니었을지라도, 사비양식 백제토기가 확산 및 발전하는데 있어 하나의 동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차
- 서 론 11. 선행연구 검토와 문제제기 12. 연구목적 및 연구방법 7연구대상 91. 사비양식 백제토기의 규정 92. 분석 대상 11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 분석 231. 양이부호 232. (耳附)직구호·직구옹 303. 자배기 354. 시루 415. 대부완 456. 이배 517. 접시 558. 연통 599. 호자 6410. 장동호 6611. 옹 6712. (대상파수부)뚜껑 6813. 합 6914. 부형토기 7015. 기타-암문(토기) 71고구려토기와의 비교검토 731. 형태 비교 742. 공정별 제작기법 비교 94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의 형성과 그 배경 991.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의 형성 과정 992. 고구려계 사비양식 백제토기의 형성 배경 110결 론 117참고문헌 120부록 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