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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저자정보

강서영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홍나영
발행연도
2022
저작권
이화여자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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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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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 후기 원삼(圓衫)과 당의(唐衣)의 통수스란(通袖膝欄)과 수복문(壽福紋)이 직금(織金) 혹은 부금(付金)으로 표현된 배경과 전개된 양상을 밝힌 것이다.
통수스란 문양은 명대 남녀 복식에 표현된 문양으로서, 의복이나 직물로 조선 전기에 유입되었으나, 조선 복식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스란은 조선 전기 치마에 수용되기는 하였지만, 용(龍)이나 봉황(鳳凰) 등을 주제로 했던 명나라 양식과는 달리, 우리 유물과 기록에는 동자(童子) 문양만이 나타나고 있다. 조선 전기에는 명으로부터 통수스란이 유입되었더라도 기호에 따라 문양을 선택적으로 수용하였다.
명에서 유입된 직물과 문양은 조선 전기보다는 임진왜란 이후에 더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조정에서는 임진왜란 직후 국내에서 직물의 생산이 어려워지자 비단의 수입을 허용하였으며, 이에 전쟁을 빌미로 국내에 주둔한 명나라 군사들과 상인들이 조성한 시장을 통해 명나라 직물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유입된 직물에는 이전에 선호했던 동자문 외에도 용이나 봉황을 주제로 한 스란 직물과 더불어 명 말기에 크게 인기를 얻은 후 청대에도 계속 사용되었던 수(壽), 만(萬 ? 卍), 희(喜 ? 囍), 복(福) 등 문자문(文字紋) 직물이 있었다. 우리 복식 유물 중에는 이러한 문양 양식이 반영된 치마, 흉배, 원삼 등이 있어, 중국에서 수입된 직물이 우리 복식 문화에 일부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17세기부터 여성들 사이에서 귀천에 관계없이 원삼과 당의의 착용이 확대됨에 따라, 상류층에서는 자연히 신분을 구별할 수 있는 의장(意匠)이 요구되었다. 마침 인조 연간(1623~1649)부터는 임진왜란으로 타격을 입었던 왕실 직조 기술이 복구되어 상의원(尙衣院)에서 왕실에서 사용할 직금 직물을 생산해 내고 있었다. 이에 왕실에서는 명 · 청으로부터 수입된 다양한 문양 직물의 양식을 일부 수용하되, 원삼과 당의의 특징에 맞추어 통수스란과 수복문을 조형하고 직금으로 직조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17세기 말부터 18세기의 왕족들이 착용하는 원삼과 당의, 저고리, 치마에는 통수스란과 수복문을 직금이나 부금으로 표현하는 금장식의 형식적인 틀이 갖춰졌다. 이후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이와 같은 금장식 예복을 왕족들이 가례(嘉禮), 책례(冊禮), 진연(進宴), 친잠례(親蠶禮) 등의 대례와 돌이나 명절 등의 일상의례에 착용하는 것이 왕실의 복식 풍속으로 정착되었다.
우리 예복의 금장식 문양은 명 ? 청대 복식의 통수스란과 문자문의 형식에 영향을 받았지만 이를 그대로 모방하지만은 않았다. 형식적으로는 명대에 통수스란과 함께 장식하는 운견(雲肩)이 우리 유물에 전혀 보이지 않고, 원삼의 경우 소매의 배래 부분이나 뒷길 등허리 부분에 란(欄)을 더 추가하기도 하였다. 문양의 양식도 17세기 이후로 유입된 명 ? 청의 도안을 참고로 하면서도, 구봉(九鳳)이나 수복(壽福)과 같이 당대에 유행한 조선 특유의 시대적인 관념을 반영하는가 하면, 흉배나 활옷과 같은 다른 예복의 의장과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양하게 변화해왔다.
조선 후기 여성 예복의 금장식 문양은 주제에 따라 크게 용문(龍紋) ? 봉황문(鳳凰紋) 및 수복화문(壽福花紋)으로 나눌 수 있다. 용문과 봉황문은 각각 용과 봉황을 주제로 하며, 주변은 구름이나 산(山), 파도, 꽃 등의 자연물로 구성되었다. 수복화문은 수복자와 보문(寶紋), 식물문(植物紋), 과문(果紋)을 조합하여 만든 문양이다. 수복화문은 수복자의 서체(書體)와 보조 문양의 조합 및 배치 방식에 따라 여러 유형이 있다. 전서체(篆書體)의 수복자를 사용하는 수복화문은 주로 원삼과 치마에 사용되었고, 보조 문양의 조형성과 구성에 따라 네 가지 유형의 도안이 있다. 이 가운데 일부 도안은 기록의 ‘전자(篆字)’, ‘수천만세(壽千萬歲)’ 등의 명칭과 부합하는 것을 확인했다. 해서체(該署體)의 수복화문은 주로 당의와 치마에 사용되었으며, 보조 문양의 구성과 조형에 따라 총 네 가지 유형의 도안으로 나뉜다. 이러한 도안을 통수스란에 직금하고 바탕문양에도 쓰면 직금 통수스란 문양이, 도안의 수복자에만 금사를 넣으면 직금 수복문이 되며, 이러한 표면적 효과를 모방하여 금박을 찍으면 부금 통수스란과 부금 수복문이 된다.
금장식 문양은 동일한 형식과 양식의 문양이라도 직금과 부금의 기법으로 나뉘어 표현되었다. 직금 예복은 직조 단계에서부터 바탕직 문양과 금장식 문양을 설계한 후 금장식 부분에만 금사를 삽입하여 문양을 표현하며, 부금 예복은 예복이 완성된 후 접착제를 바른 문양판을 찍은 다음 금박을 입혀 문양을 표현한다. 직금 예복은 바탕문양과 직금문양을 함께 설계하여 직성(織成)되는 만큼 완성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예복을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소요되며, 문양의 표현이 고정적이기 때문에 재단 시 직금 문양이 손실되는 부분이 생긴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부금은 금박 견뢰도가 상대적으로 낮지만, 제작이 비교적 용이하며 예복의 형태에 따라 문양판을 조절함으로써 문양의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왕실에서는 이와 같은 각 기법의 장단점을 고려하여 의례의 경중과 상황에 따라 직금과 부금 예복을 만들었다. 이와 같이 동일한 형식의 문양도 직금과 부금의 기법에 따라 표현할 수 있었다는 점 또한 명 ? 청과는 다른 우리 예복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그간 국내외 기록과 유물 자료를 종합하여 조선 후기 여성 예복에 금장식 문양이 표현된 배경과 과정을 밝히고, 금장식 문양의 양식적인 특징을 분석하였다. 조선 후기 여성 예복에 표현된 금장식 문양의 조형에는 명 ? 청 복식 문양의 영향이 있었지만, 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여 고유의 특징을 지닌 다양한 양식의 문양으로 발전시켜 온 것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연구의 의의를 둔다. 이 연구에서 정리된 많은 유형의 금장식 문양 도안들이 향후 우리 예복의 고증과 활용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목차

Ⅰ. 서론 1
A. 연구 목적 및 의의 1
B. 연구 범위 및 방법 4
Ⅱ. 조선시대 여성 예복제도 고찰 6
A. 조선 전기 여성 예복의 종류와 성격 6
1. 조선 전기 적의제도 시행과 명나라 명부 예복제도에 대한 이해 6
2. 명나라 단삼과 조선 전기 원삼의 연관성 11
3. 노의와 장삼의 형태와 기능 16
B. 조선 후기 여성 예복의 변화 21
1. 원삼과 당의의 발달 배경 22
2. 원삼과 당의의 착용 확대와 신분 구별 강화 26
C. 대한제국 이후의 여성 예복제도 33
Ⅲ. 조선시대 복식에 표현된 금장식 문양의 역사 38
A. 직금의 역사 38
1. 직금에 관한 기록 38
2. 직금 직물을 사용한 조선시대 복식 유물 47
B. 부금의 역사 57
1. 부금에 관한 기록 57
2. 부금으로 장식한 조선시대 복식 유물 59
Ⅳ. 조선시대 복식에 표현된 통수스란 및 문자문의 수용과 전개 65
A. 조선 전기의 통수스란 65
B. 임진왜란 이후 통수스란과 문자문 75
1. 임진왜란 이후 스란문의 새로운 경향 75
2. 임진왜란 이후 문자문의 수용 79
Ⅴ. 조선 후기 여성 예복에 표현된 금장식 문양 91
A. 시기별 문양의 전개 91
1. 17세기부터 18세기 91
2. 19세기 96
3. 20세기 초 106
B. 문양의 종류 117
1. 용문과 봉황문 118
2. 수복화문 129
3. 기타 문양 156
C. 표현 기법에 따른 금장식 문양의 특징 159
1. 직금 예복 159
2. 부금 예복 172
Ⅵ. 결론 182
참고문헌 186
ABSTRACT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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